11일 저녁 7시 대구 중구 동성로 대구백화점 앞에서 열린 ‘박근혜 퇴진 2차 대구시국대회’에서 4000여명이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외치고 있다.
“오바마한테 우리나라에 와서 대통령 좀 하라고 하면 안되나요?”
“박근혜한테 노무현 대통령의 10분의 1만이라도 좀 하라고 하세요.”
“어른들은 왜 투표를 그렇게 해요? 내가 해도 박근혜 보다는 잘하겠어요.”
박근혜 대통령을 뽑거나 뽑지 않을 권리 조차 없었던 여고생들은 분노해 이런 말들을 쏟아냈다. 11일 저녁 7시 대구 중구 동성로 대구백화점 앞에서 열린 ‘박근혜 퇴진 2차 대구시국대회’에는 4000여명이 쏟아져 나왔다. 교복을 입고 나온 고등학생들이 많았다. 학생들은 손에 촛불과 ‘박근혜 퇴진’이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박근혜 퇴진”을 외쳤다.
“어른들은 진짜 웃겨요. 자기들이 (박 대통령을) 뽑아놓고 이제는 자기들이 (대통령에서) 내려오라고 해요. 박 대통령도 이해가 안가고 어른들도 이해가 안 가요.” 육혜빈(18)양이 이렇게 말했다.
“박근혜는 자기 아빠도 대통령이었는데 어떻게 정치를 이 따위로 하나요? 잘 못할 거면 내려오면 되는 거지 왜 버티고 있는지 이해가 안가요.” 정혜영(18)양이 고개를 저었다.
“지난 5일에 열린 1차 집회 때도 친구들과 나왔어요. 고3이긴 하지만 나라가 이 꼬락서니인데 공부가 문제겠어요? 오늘 친구들과 행진까지 하고 갈 거에요. 박근혜 대통령이 빨리 하야했으면 좋겠어요.” 이예진(18)양이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대구 동성로에서는 열린 2차 대구시국대회에는 지난 5일 1차 대구시국대회(3000명 참여) 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나왔다. 동성로 야외무대에서 국채보상로까지 길 100m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사람들은 서있을 공간이 없어 상가 입구에 줄지어 촛불을 들고 집회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사람들은 “박근혜는 퇴진하라. 박근혜를 구속하라. 새누리당은 해체하라”라고 외쳤다. 공교롭게도 이날 2차 대구시국대회가 열린 장소는 박 대통령이 태어난 곳(대구 중구 삼덕동1가 5-2)과 150m 밖에 떨어져있지 않은 곳이었다.
배한성(52·수성구 파동)씨는 “이게 나라냐? 화가 나고 피가 거꾸로 솟아 집에 도저히 있을 수 없어 가족들을 데리고 나왔다. 내가 힘만 있다면 진짜 싹 다 쓸어버리고 싶다. 미친년이 나라를 말아 먹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안은영(38·동구 신암동)씨는 “열심히 살면 다 잘될 거라는 믿음으로 지금까지 살아왔는데 지금 느끼는 참담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남편과 세살 난 아들을 데리고 나왔다. 지금은 어려 아무것도 모르겠지만 아이가 어른이 되면 그 때 우리가 왜 여기에 나왔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11일 저녁 6시 대구 청소년들이 대구 중구 공평동 2·28기념중앙공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박근혜 대통령 하야를 촉구하는 시국선언문을 발표하고 있다.
71개 단체로 꾸려진 ‘박근혜 퇴진 대구비상시국회의’는 이날 저녁 8시30분 집회를 마치고 620m(국채보상로~공평네거리~봉산육거리~반월당네거리~중앙로역)를 행진했다. 집회에 참여한 사람들 상당수가 행진까지 참여했다.
서승엽 대구시민단체연대회의 운영위원장은 “초를 3500개 준비했는데 금세 다 떨어졌다. 2008년 광우병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집회 때 이후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나온 것은 처음 본다”라고 말했다.
이날 집회가 시작되기 한 시간 전인 저녁 6시 대구의 청소년들은 대구 중구 공평동 2·28기념중앙공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602명의 청소년이 시국선언문에 서명했고, 30여명의 청소년들이 기자회견에 나왔다.
이들은 시국선언문에서 “1960년 2월28일 청소년들의 외침으로 일궈낸 민주주의는 허망하게 부정됐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청소년은 대한민국 국민이며 주권자이다. 헌법과 민주주의를 부정한 박근혜는 즉각 하야하라”라고 밝혔다.
대구에서는 1960년 2월28일 학생 1200여명이 이승만 대통령 자유당 독재에 저항해 거리로 뛰쳐나왔다. 대구 2·28 학생 민주화운동이라고 불리는 이 시위는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하는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됐다.
고등학교 2학년인 이학선(17)군은 “대구 청소년들도 2·28 대구 학생 민주화 운동의 정신을 알고 있다. 그때도 지금도 민주주의가 부정됐기 때문에 시국선언을 준비했고 생각보다 많은 학생들이 참여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글·사진 대구/김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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