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낮 12시 ‘박정희 대통령 99회 탄신제’가 열린 경북 구미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 주변에서 해고 노동자 5명이 ‘박근혜 퇴진’ 시위를 하자, ‘박해모’, ‘박사모’ 등이 적힌 옷을 입은 사람들이 욕설을 하고 있다. 김일우 기자 cooly@hani.co.kr
‘박근혜 퇴진’
14일 경북 구미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의 ‘박정희 대통령 99회 탄신제’에 온 사람들을 맞이한 손팻말 내용이다. 이날 낮 12시께 차헌호(43)씨 등 5명은 박 전 대통령 동상으로 가는 길 주차장에서 ‘박근혜 퇴진’ 손팻말을 들었다. 이들은 구미에 있는 기업 아사히글라스 화인테크노코리아 사내하청업체에서 일하다가 지난해 해고된 노동자들이다. 차씨는 “전 국민이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외치고 있는데 구미에서는 아직도 이런 행사를 하고 있다. 구미 시민들 중에서도 다른 목소리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용기를 내서 이곳에 나왔다”고 말했다.
14일 오전 10시 ‘박정희 대통령 99회 탄신제’가 열린 경북 구미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 주변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 앞에서 한 사람이 절을 하고 있다. 김일우 기자 cooly@hani.co.kr
“김정은이 시키더나”, “종북 빨갱이들”, “너거 선생도 전교조냐” 탄신제에 참석했다가 나오던 수십여명이 차씨 등을 보고 이런 욕설을 퍼부었다. 이들은 주먹으로 해고 노동자들의 얼굴과 머리 등을 마구 때렸다. 차씨 등이 들고 있던 손팻말도 모두 부쉈다. 차씨는 오른손 살갗이 벗겨지고, 다른 해고 노동자 오수일(44)씨는 입술이 터져 피를 흘렸다.
이날 박 전 대통령 생가 주변 곳곳에서는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는 1인 침묵시위가 열렸다. 구미에서 박 전 대통령 추모제(10월26일)와 탄신제(11월14일)를 할 때 이런 시위가 벌어진 것은 처음이다. ‘박사모’, ‘박해모’ 등이 적힌 옷을 입은 사람들과 노인들은 1인 시위자에게도 욕설을 퍼붓거나 때렸다. 한 40대 여성은 1인 시위를 하다가 폭행을 당해 경찰이 급히 피신시키기도 했다.
14일 낮 12시 ‘박정희 대통령 99회 탄신제’가 열린 경북 구미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 주변 특설무대 앞에 마련된 의자 곳곳이 비어있다. 김일우 기자 cooly@hani.co.kr
이날 탄신제에는 1000명 가량 참석했다. 지난해 탄신제에 2000명이 왔던 것의 절반 정도다. 하지만 구미시는 이날 탄신제가 끝나자 “2000명이 참석했다”고 보도자료를 냈다.
탄신제에는 남유진 구미시장, 김관용 경북도지사, 백승주(구미시갑)·장석춘(구미시을) 국회의원, 김익수 구미시의회 의장, 서상기 전 국회의원 등이 참석했다. 남 시장 등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혼란스러운 상황을 의식해서인지 기념사와 축사에서 논란이 될 수 있는 말은 하지 않았다. 남 시장은 2013년 11월14일 ‘탄신제’ 기념사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은 ‘반신반인(半神半人)’으로 하늘이 내린 천운이라는 말밖에는 나오지 않는다”며 “오늘날 성공은 박 전 대통령에서 시작됐다”고 말해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구미시는 해마다 ‘박정희 대통령 생가보존회’에 예산을 지원해 박 전 대통령의 추모제와 탄신제를 열고 있다. 구미시가 지난 7년 동안(2009~2015년) 탄신제와 추도식에 쓴 돈은 모두 5억3338만원이다.
김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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