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광주 금남로에서 열린 5차 시국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이 박근혜 대통령 하야를 촉구하고 있다.
광주 금남로에 부슬부슬 비가 내렸지만, 열기가 뜨거웠다. 7만여 명(경찰 추산 1만2천여 명)의 시민들은 비옷을 입은 채 차가운 아스팔트에 앉았다. 시민들의 손엔 ‘박근혜 퇴진’, ‘당장 내려와’ 등이 적힌 종이 팻말이 들려 있었다. 시민들은 <아리랑 목동>을 개사한 ‘하야송’이 나올 때마다 엘이디(LED)촛불을 흔들며 함께 불렀다.
26일 저녁 광주시 동구 금남로에서 시작된 광주시민 5차 촛불집회 무대에 5·18어머니 소나무합창단이 섰다. 80년 5월 가족을 잃은 오월 어머니들은 이날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를 불렀다. 80년 5월 27일 새벽 옛 전남도청에서 고교생 시민군으로 최후 항쟁을 하다가 계엄군 총에 맞아 숨진 고 문재학(16·고1)군의 어머니 김길자(77)씨는 “박근혜 정부가 옛 전남도청의 흔적마저 지우고 있어 81일동안 농성중입니다. 우리 오월 어머니들도 함께 나서서 박근혜를 꼭 끌어내리겠습니다”라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이날 촛불집회에서도 재치있는 시민들의 자유발언이 이어졌다. 한 50대 남성은 “기성세대로서 ‘흙수저’밖에 물려주지 못해 미안하다. 그러나 다이아몬드도, 금도, 은도 땅속에 묻혀 있다. 그러니 흙수저가 주인이다. 젊은이들이 절망하지 말도록 박근혜를 하야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학교 비정규 노동자인 한연임씨는 “불안한 운전자에게 더 이상 국정을 맡길 수 없다. 박근혜 하야 투쟁에 함께 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사회를 맡은 문화예술인 백금렬씨가 “박근혜를”하고 선창을 하면, 시민들은 “감옥으로”, “땅속으로”, “지 애비 곁으로” 자유롭게 후창으로 화답했다.
광주 시민들이 26일 밤 거리행진을 하며 박근혜 퇴진을 외치고 있다.
시민자유 발언 사이 사이에 문화공연도 이어졌다. 숭일고 70명의 학생은 <레미제라블 노래 개사곡>을 불러 큰 박수를 받았다. 수안스님 노래 공연과 대형걸개그림 상황극 등도 시민들한테 큰 호응을 얻었다. 본 행사에 앞서 사전 행사로 열린 '하야하툅' 문화제 땐 삼촌밴드, 우물안 개구리, 김과리, 더티라콘 등 밴드들이 등장해 흥을 돋궜다. 밴드 보컬 김태승(35)씨는 “2014년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뒤 ‘이게 나라냐?’라는 가사가 들어간 노래를 지어 불렀는데, 지금의 상황이 더욱 암담했다”고 말했다.
이날 시민들은 박근혜-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해 “박근혜 처벌”을 강조했다. 김상훈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광주전남지부장은 “직권남용죄는 형량 법정상한이 5년이고 집행유예가 가능하지만 뇌물죄는 1억원 이상이면 특별법에 따라 무기 징역까지 처벌할 수 있고, 뇌물의 5배를 벌금으로 매길 수 있다. 검찰은 대통령에 대해 직권남용 혐의가 아니라 포괄적 뇌물혐의에 대해 수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 지부장이 “그가 대통령의 신분을 벗는 순간 뇌물죄로 처벌해야 한다”고 지적하자, 시민들은 “와~”하는 함성과 함께 박수를 보냈다.
시민들은 이날 저녁 8시30분부터 거리행진을 시작했다. 옛 충장파출소~광주천변 코스와 옛 한미쇼핑~롯데백화점 코스로 각각 나뉘어 행진한 뒤 다시 금남로 본무대로 돌아오는 촛불대행진으로 마무리했다. 시민들은 금남로에서 ‘광주시민 촛불 격문’을 발표할 예정이다.
한편, 본집회에 앞서 이날 오후 3시부터 금남로 금남공원에서는 ‘1318광주희망’의 광주청소년시국대회가, 오후 4시엔 알라딘 서점 앞에서 광주청년학생대회가 각각 열렸다. 조선대 민주동우회와 조선대 대학자치운영협의회는 이날 오후 5시 조선대 정문에서 시국선언을 발표한 뒤 금남로까지 거리행진을 펼쳤다.
광주/글·사진 정대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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