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청소년 시국대회를 주최하고 연극을 공연한 고등학생들이 지난 4일 오후 둔산동 갤러리아타임월드 앞에 모여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우리도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해요. 오늘 우리의 행동이 내일의 대한민국을 만들겠죠.”
지난 4일 오후 3시 대전 둔산동 갤러리아타임월드 앞에선 ‘청소년 시국대회’ 펼침막이 바람 소리를 냈다. 이내 조용히 무대에 오른 한 여고생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찬 공기를 갈랐다. 삼삼오오 모여 앉은 중·고생 100여명은 차디찬 아스팔트 바닥에 앉아 ‘박근혜 탄핵’ 손팻말을 앞세우고 뜨겁게 환호했다.
어디에도 어른은 없다. 교복 입은 학생들이 분주하다. “다음 발언자 대기! 대기! 연극 엠아르(MR·반주음악)는 준비됐어?” 행사 진행을 맡은 학생이 출연자들을 챙기느라 여념이 없을 때 주변 통제를 맡은 학생의 외마디가 허공을 갈랐다. “아저씨, 여기서 담배 피우시면 안 돼요!” 한 남성이 멈칫 물러서 불을 끈다.
시국대회는 대전지역 고교 3학년 임현장(중앙고)·김병석(대전고)·한계영·송치재(이상 보문고)군이 주축이 됐다. 중학교 동창에, 동네 친구로 엮인 넷은 수능을 코앞에 두고 주뼛주뼛 나가 본 촛불집회에서 생각보다 많은 청소년이 거리에 선 모습을 보고 놀랐다.
“수능 뒤 청소년끼리 청소년을 위한 자유발언대를 만들기로 했죠. 어른들은 공부만 말하지만 학생도 시민이고, 국민이잖아요. 우리도 국민 주권이 뭔지 알아요. 우리 목소리로도 뭔가 바뀔 수 있다는 생각으로 광장에 나서고 싶었어요.”
수능 3일 뒤 이들은 약속한 대로 아지트인 동네 카페에 모였다. 자금, 일정, 장소, 집회 신고, 자유발언 섭외, 홍보까지 고민할 게 한둘이 아니었다. 논술, 체대입시 준비에 아르바이트까지 시간이 부족했지만 매일 카톡 회의를 했고, 일주일에 2∼3차례 만나 전략을 짰다.
“생각은 누구나 하지만 행동으로 옮기긴 쉽지 않잖아요. 바쁜 일정에 귀찮을 때도 있고, 실패할까 봐 겁도 났지만 포기하고 싶지 않았어요.”
박근혜 퇴진 대전운동본부에 연락해 무대·음향·장소 등을 지원받기로 했다. 또래 청소년 관객·출연진을 모으는 게 문제였다. 대전지역 고교 64곳의 학생회장 연락처를 구해 뜻을 전했지만 반응은 미적지근했다. 결국 친구를 통한 입소문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이용해 분주히 뛰었다.
대전 청소년 시국대회를 주최한 고등학교 3학년 송치재(왼쪽부터), 임현장, 한계영, 김병석 학생이 시국대회를 마친 뒤 청중에게 인사하고 있다.
준비는 힘겨웠지만 무대는 창대했다. 청소년의 눈으로 시국을 풍자하자는 뜻에 의기투합한 7명은 연극 ‘개와 닭’으로 참여했고, 중·고생 12명은 무대에 올라 자유발언을 했다. 노래 재능기부도 이어졌다. 빈자리가 많던 행사장은 청소년은 물론 어른까지 500여명이 함께 하는 성대한 시국대회장이 됐다. 행사 뒤 2차 청소년시국대회를 제안하는 팬들도 생겨났다. 이들 사총사의 마음은 여전히 촛불집회장에 머물고 있다.
“시국대회가 끝나고 무대에 올라 우리 힘으로 만든 광장을 바라보면서 가슴 벅찬 감동을 했어요. 광장에 모인 국민의 뜻이 얼마나 무겁고 귀중한가를 박근혜 대통령도 제대로 알고 당장 그 자리에서 내려와야 해요.”
글·사진 최예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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