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 반환 요청에 “주면 불법설치”…보관장소도 함구
일 영사관 “박삼석 구청장, 강한 리더십” 지난달 서한
일 영사관 “박삼석 구청장, 강한 리더십” 지난달 서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인권과 명예를 기리는 뜻을 담고 있는 ‘평화의 소녀상’(소녀상)을 도로법의 ‘불법 노상 적치물’로 보고 강제 철거한 부산 동구가 소녀상 반환을 거부했다. 시민들은 소녀상 건립 터인 동구 초량동 일본영사관 근처에서 노숙 투쟁에 나섰다.
동구는 29일 “소녀상은 도로법에 따라 불법 시설물로 보고 철거에 나선 것이다. 절차상 하자 없는 정당한 권한 행사”라고 밝혔다. 앞서 동구는 경찰과 함께 한·일 정부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 관련 12·28 합의 1주년인 지난 28일 ‘미래세대가 세우는 평화의 소녀상 추진위원회’(추진위)가 일본영사관 앞에 설치한 소녀상을 4시간여 만에 강제 철거했다.
동구는 강제 철거해 압수한 소녀상에 대한 정보를 추진위 쪽에 알려주지 않고 있다. 도로법 시행령에는 ‘노상 적치물 소유자 등이 쉽게 보관장소를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무단 적치물에 대한 과태료 등 행정처분을 내리기 위해서다. 소유자가 과태료를 내면 행정관청이 적치물을 계속 보관할 근거가 없다. 추진위 쪽은 “동구가 소녀상 보관장소를 알려주지 않고, 과태료 영수증도 발부하지 않고 있다. 과태료를 발부하면 즉시 납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한춘 동구 안전도시국장은 “소녀상을 돌려주면, 일본영사관 앞에 불법 설치될 가능성이 있다”며 사실상 소녀상 반환을 거부했다. 새누리당 소속인 박삼석 동구청장은 이날 자리에 없었다. 박 구청장은 이날 휴가를 내고 서울에서 열린 새누리당 전국위원회에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추진위는 동구가 법적 근거도 없이 소녀상을 무단 점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법적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 추진위는 또 일본영사관 근처의 정발장군 동상 앞에서 소녀상 반환과 설치 허용을 촉구하는 천막 철야 농성에 들어갔다. 김유란 부산겨레하나 미디어홍보부장은 “지금까지 일본영사관 앞 소녀상 건립을 막아선 동구가 소녀상을 강제 철거하고 반환을 거부하고 있다. 온 국민의 분노가 동구를 향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월 부산의 청소년, 대학생, 예술인들이 모여 만든 추진위는 지난 3월부터 일본영사관 앞에 소녀상을 설립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추진위는 지난 8월부터 동구에 소녀상 건립 협의를 요청했지만, 동구는 소녀상이 “도로점용 허가를 받을 수 있는 공작물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불허했다. 일본영사관 쪽은 지난달 28일 동구에 “박 구청장이 강한 리더십으로 대응해주고 있지만, 소녀상이 설치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내용의 서한문을 보냈다. 부산/김영동 기자 yd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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