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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학교라 아이들 재능이 더 크게 보여요”

등록 2017-01-06 10:53수정 2017-01-06 11:05

전북 부안면 봉암초 폐교위기서
공동학구 묶이며 학생 30~40명 유지
학교가 배움터이자 밥집·놀이터
학생 재능 발견 체조부 운영

인천 용정초·봉화초, 강릉 영동초
부산 좌천초, 대전 길헌분교 등
통폐합 앞두고 주민반발 잇따라
“통폐합, 교육재정 절감 미미한데
농산어촌 인구만 유출” 보고서 나와
전북 고창의 봉암초등학교 학생들이 지난 4일 정오 점심을 먹으러 가기 위해 운동장에 모여 익살스런 몸짓을 하고 있다.
전북 고창의 봉암초등학교 학생들이 지난 4일 정오 점심을 먹으러 가기 위해 운동장에 모여 익살스런 몸짓을 하고 있다.
학교 앞 삼거리 식당이 어린이 소리로 시끄럽다. 너른 상 위에 놓인 돼지불고기, 떡볶이, 장조림, 시금치, 버섯볶음, 콩자반 위로 고사리 손들이 바쁘게 오간다. “아주머니, 여기 장조림 좀 더 주세요!” 2학년 인철이의 주문 솜씨가 야무지다.

지난 4일 정오 전북 고창군 부안면에 있는 봉암초등학교 앞 인도. 이제 막 점심 식사를 마친 초등학생 20여명이 열을 맞춰 학교로 향했다. 방학인데도 전교생 중 절반 이상 학교에 나왔다. 급식시설이 없어 인근 면소재지 학교에서 밥을 가져와 먹는 봉암초 학생들은 방학 때는 학교 근처 식당에서 점심 끼니를 해결한다. 큰 규모 학교들과는 달리 이 학교에선 방학 때도 점심밥이 공짜다. 아이들을 인솔하던 이종원 교사는 “학생 수가 적은 작은학교라 가능한 일”이라고 귀띔했다.

5학년인 왈가닥 윤아는 “전교생 이름을 모두 외운다”고 자랑했다. “부설유치원생까지 합해도 전교생이 60명이 안되니 모두 가족처럼 지낼 수밖에 없어요. 우리 학교엔 왕따가 없죠”라고 말하다 “화장실 줄을 안 서도 되는 게 제일 좋아요”라며 깔깔댄다. 체육담당 한승오 교사는 “전교생이 다 함께 오랜 시간 추억을 쌓으니 저학년부터 고학년까지 모두 사이가 돈독하다. 서로 돕고 배려하는 마음을 어릴 때부터 자연스레 배운다”고 말했다.

차로 15분 거리의 대동마을에 사는 6학년 재진이에게 학교는 작지만 큰 공간이다. 친구들 집과 거리가 멀어 학교에 와야 비로소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 재진이는 “부모님 일 나가시면 집 지키며 혼자 밥을 먹어야 하니 방학 때도 집보단 학교가 좋다”고 말한다. 대부분 농촌에 사는 봉암초 학생들에게 학교는 배움터이자 든든한 밥집이고 유일한 놀이터다.

고창읍에서도 가장 멀리 떨어진 농산어촌 학교인 봉암초는 매년 학생 수가 줄면서 그동안 여러차례 폐교 위기를 겪었다. 상황이 달라진 건 4년 전이다. 최석진 교장이 부임한 뒤 본격적으로 학교 활성화에 나섰다. 교육청에 신청해 2014년 차로 30분 거리의 고창초등학교와 학구를 넘어 학교를 옮길 수 있는 공동학구로 묶이면서 줄기만 하던 학생 수도 30~40명을 유지하고 있다. 학구는 특정 지역 주민의 자녀에게 특정한 학교에 갈 것을 지정해 놓은 구역이다. 현재 고창초 학구에서 봉암초까지 등교하는 학생은 16명이다.

봉암초는 ‘자연과 함께 하는 학교’를 표방하며 교실벽을 황토 재질로 바꾸고 운동장에 천연잔디를 깔았다. 학교 옆 텃밭에서는 아이들이 직접 옥수수와 토마토, 오이, 상추 등을 심고 가꿨다. 학교에서 조금 떨어진 산과 습지, 바다와 갯벌로 틈만 나면 체험학습도 간다. 지난해엔 전교생이 비행기 타고 백두산을 보고 왔다. 여비는 학교가 예산을 아껴 모두 부담했다. 5학년 인환이는 “여러 곳에 직접 가서 많이 체험할 수 있어서 학교 오는 게 늘 즐겁다. 형·동생과 모두 함께 백두산에 갔던 일이 가장 신났다”며 눈을 반짝였다.

봉암초 5·6학년 학생들이 지난 4일 오전 ‘생크림 만들기의 원리’ 수업을 듣기 위해 1층 과학실에 모였다.
봉암초 5·6학년 학생들이 지난 4일 오전 ‘생크림 만들기의 원리’ 수업을 듣기 위해 1층 과학실에 모였다.
하지만 지역의 작은 학교가 모두 봉암초처럼 살아 남진 못한다. 주민이나 교사들의 ‘특별한 의지’가 없는 이상 통폐합 흐름을 거스르기는 어렵다. 지난 2일 찾은 전남 영광군 백수읍의 백수남초등학교의 교문은 자물쇠로 묶여 굳게 닫혀 있었다. 걸어서 등교하던 2학년 자성이는 이제 아침마다 통학 버스를 10분 가량 타고 학교에 간다. 이 학교 마지막 학교운영회장 장종대(62)씨는 “학교가 없어지면 마을이 더 쇠퇴할 것이란 걱정도 있었는데, 학생 수가 적으면 교육 질이 떨어진다는 교육청 입장에 학부모와 주민들이 동의해줬다”고 말했다.

지난 2일 전남 영광의 백수남초학교의 문이 굳게 닫혀 있다. 이 학교는 지난해 3월 1일자로 폐교돼 차로 10분 거리의 백수초등학교로 통합됐다.
지난 2일 전남 영광의 백수남초학교의 문이 굳게 닫혀 있다. 이 학교는 지난해 3월 1일자로 폐교돼 차로 10분 거리의 백수초등학교로 통합됐다.
‘소규모 학교 통폐합’은 국가 시책이다. 교육부는 농산어촌 아이들이 줄어듦에 따라 십수 년 전부터 일정 규모 이하의 학교는 통폐합 하는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적정규모 학교 육성’이란 이름으로 “구도심과 농산어촌 지역 소규모 학교의 열악한 교육여건을 개선한다”고 설명하지만 실은 경제 논리가 배경에 깔려 있다. 시·도교육청이 폐교에 ‘성공’하면 학교 규모와 학생 수에 따라 적게는 20억원에서 많게는 110억원까지 ‘인센티브’도 준다.

‘규모의 경제’ 논리가 맞는지를 놓고 교육현장의 논란은 끊이지 않는다. 지금도 인천의 용정초·봉화초, 강원 강릉의 영동초, 부산의 좌천초, 대전의 기성초 길헌분교장 등 폐교 위기에 놓인 학교의 학부모와 주민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학교의 폐교가 아이들의 통학 시간을 늘리고 지역공동화를 부를 것이라고 우려한다. 인근 도시로의 인구 유입과 농산어촌의 공동화를 가속화해 귀촌·귀농같은 시대 흐름에도 역행하는 정책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지역 교육청에 따라선 작은 학교를 일방적으로 통폐합 할 게 아니라 되레 활성화 정책을 펴 아이 키우기 좋은 지역 공동체를 만들려는 곳도 적지 않다. 서울·세종·전북·제주 등은 교육감의 의지로 “통폐합은 없다”는 기조를 세워놓고 작은학교 살리기를 적극적으로 한다. 전북교육청은 2013년부터 인근 큰 학교와 농촌 작은학교를 공동통학구으로 설정하는 ‘어울림 학교’를 운영해 효과를 보고 있다. 지난해 전북의 초등학생 수는 시지역의 경우 모두 줄었지만 농어촌 지역은 1.9% 늘었다. 봉암초처럼 공동학구로 지정된 학교 학생 수는 5.8%나 증가했다. 최근 통폐합 논란에 휩싸인 대전 기성초 길헌분교 학부모들이 교육청에 공동학구제 도입을 요구하는 배경이다. 학부모들은 “작은학교에서는 학생 한명 한명이 주인공인 학교 생활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학교 폐교를 반대하는 마을 주민들은 “지역의 미래인 학교가 사라지면, 마을도 공동체도 무너진다”고 걱정한다. 폐교로 얻을 수 있는 경제적 가치보다 잃어버리는 교육적·공동체적 가치가 훨씬 크다는 것이다.

실제 한국교육개발원이 2010년 만든 ‘농산어촌 소규모 학교 통폐합 효과 분석’ 보고서를 보면 2006~2010년 5년 동안 소규모 학교 통폐합의 비용 대비 수익은 평균 1.1에 그쳤다. 이 보고서는 “통폐합 정책의 주요한 정책 목표가 교육재정 절감이라는 점에 비춰보면 실제 통폐합 정책의 재정 절감 효과는 미미한 수준”이라며 “소규모 학교 통폐합 정책이 농산어촌 정주 여건을 개선하기보다는 오히려 인구를 유출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석진 봉암초 교장은 “지역에 학교가 없으면 귀농·귀촌을 기대할 수 없다. 학교가 있어야 마을에 아이가 살 수 있고, 지역의 미래도 이어질 수 있다. 학교에 학생이 1명이어도 폐교할 수 없는 이유다”라고 강조했다. 고창 영광 대전/글·사진 최예린 기자 floy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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