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일(왼쪽)·박희인씨가 14일 저녁 대전 타임월드 앞 행사장에서 열린 ‘박근혜 퇴진 대전시국대회’에서 박근혜 구속 수사를 촉구하는 구호를 선창하고 있다.
14일 오후 5시 대전 서구 둔산동 갤러리아 타임월드 백화점 앞 도로, ‘박근혜 퇴진 제9차 대전시국대회’가 열렸다.
“박근혜, 재벌총수 구속하라.” 사회자의 선창을 따라 구호를 외치는 시민들 머리 위로 입김이 안개처럼 피어올랐다. 땅거미가 길어지면서 영하의 칼바람이 거세졌지만, 시민들은 하야가를 부르고 율동 하며 추위를 이겨냈다.
대전시민은 지난해 11월1일 이곳에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분노하는 첫 촛불을 밝혔다. 그리고 매주 수요일, 토요일마다 이곳은 아스팔트 도로에서 민주주의와 국민주권을 회복하는 시민 광장이 됐다.
이 광장에서 촛불을 이끈 두 사람이 있다. 김신일 성서대전 사무국장과 박희인 박근혜 퇴진 대전운동본부 촛불기획팀장이다. 김 사무국장과 박 팀장은 말솜씨가 차분하고 논리적이어서 발탁됐다. 두달여 동안 시민과 눈·비를 맞고, 울고 웃으며 대전 촛불집회를 꾸려 모두의 오빠·언니이자 동생이 된 두 사람을 만났다.
박희인 팀장은 촛불광장에 설 때마다 냉정하자고 다짐하며 자신을 다잡았다고 했다. 박 팀장은 “광장의 모든 순간이 감동이었다. 시민들은 박근혜 탄핵과 부역자 처벌, 사회·정치 개혁을 촉구하며 민주주의 회복 운동을 실천했다”고 말했다.
“청소년들이 학교와 이름을 당당히 밝히고 원하는 대통령, 바라는 나라를 말했어요. 어린데도 주권자로서 당당하게 무대에 서는 모습을 보면 이 땅의 민주주의가 참 튼튼하게 자라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눈물이 나요.” 박 팀장은 “박종철 열사도 하늘에서 촛불 행렬을 보고 청소년들의 발언을 들으며 기뻐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무대에서는 김병국 대전세종충남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 이사장이 87년 6월 항쟁의 촉매가 된 고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사건의 전말을 소개하고 선배들의 전통을 이어 박근혜를 구속하고 정경유착과 권력의 사유화 등 적폐를 청산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무대 오른쪽에 설치한 정원 스님 분향소에는 흰 국화가 쌓였다.
숙연한 분위기 속에 어둠이 짙어졌다. 장호진씨의 노래 공연이 끝나자 김 사무국장과 박 팀장이 무대에 올라 또박또박한 말투로 “헌법파괴 주범이다. 박근혜 구속하라”, “공작정치 김기춘 우병우를 구속하라”, “재벌총수 구속하라” 구호를 선창했다. 1천여 시민들이 촛불을 들어 흔들며 구호를 삼창했다. 대회장 분위기가 되살아났다.
시국 발언이 이어지는 사이 다시 두 사람을 만나 기억에 남는 집회를 물었다. 두 사람 모두 세월호 가족들과의 만남이었다고 대답했다. 김 사무국장은 “세월호는 분노의 중심에 있다. 시민들은 아무도 구하지 못하고 세월호가 침몰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던 아픔과 정부가 세월호의 진실을 왜곡하고 유가족을 종북몰이한 사실을 트라우마로 기억한다”고 밝혔다.
“헌재는 탄핵을 인용하고, 박근혜와 공범, 재벌총수들은 모두 구속해 죗값을 치르게 해야 합니다. 또 정권을 교체해 사회적으로 적폐를 청산하는 그 날을 시민과 함께 기다리겠습니다.”
오후 6시10분, 두 사람이 큐시트를 촛불로 바꿔 들고 무대에서 내려왔다. 시민들이 촛불을 들어 어두운 거리를 밝히며 행진에 나섰다.
한편 이날 오후 6시에는 세종시 도담동 싱싱장터 광장에서 11차 세종 촛불이 켜졌고, 충남 공주, 서천, 내포, 충북 청주, 강원도 춘천에서도 박종철 열사 30주기와 소신공양한 정원 스님을 추모하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공작정치 주범 및 재벌총수 구속처벌을 촉구하는 시국대회가 열렸다.
대전/글·사진 송인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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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추위가 엄습한 14일 저녁 대전 타임월드 앞에서 열린 ‘박근혜 퇴진 제9차 대전시국대회’에서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하야가를 부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