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청양 강정리에 사는 김길수(72) 할머니가 집 앞 밭에 앉아 석면 광산 터에 들어선 건설폐기물 중간처리업체를 바라보고 있다. 김 할머니 집 근처의 업체 부지 경계선 언덕에 가림막이 세워져 있다.
마음 놓고 숨 쉬며 살 권리는 모두의 것인가? 삶터를 뿌연 건설폐기물 분진과 ‘1급 발암 물질’ 석면에 내어주고 가슴 졸이며 사는 사람들이 충남에 있다. 지난 27일 청양 비봉면 강정리 마을회관에서 만난 노형식(75)씨는 앉아서도 ‘쌕쌕’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노씨는 자신의 폐병을 마을 한가운데 자리한 ‘사문석 광산터’ 때문이라고 했다. 사문석엔 발암 덩어리 석면이 포함됐다.
“일제강점기부터 있던 광산인데, 어릴 적에 광산일 가는 부모님 따라 사문석 천지인 데서 놀고 그랬재. 그때는 석면이 그렇게 무서운 것인지 몰랐슈.”
2011년 환경부에서 강정리 사문석 광산을 조사해보니 1.5% 농도의 석면(트레몰라이트)이 검출됐다. 지금까지 이 광산 반경 2km 안에 사는 주민 11명이 석면 피해를 인정받았고, 이 가운데 5명이 숨졌다. 2013년 강정리 주민들이 주변 마을까지 주민 500여명을 직접 찾아가 확인했더니 폐암으로 숨진 사람만 35명이었다.
2011년 석면안전법이 제정된 뒤 강정리 광산의 사문석 채취는 멈췄다. 하지만 강정리 주민들의 ‘석면 공포’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석면 광산 터에 자리 잡은 ‘건설폐기물 처리장’이 2001년 가동됐기 때문이다. 폐기물을 부수며 나온 분진과 소음, 좁은 시골길을 누비는 대형 화물차 때문에 고통받던 주민들은 폭발했다. 이 업체는 2013년 8월 폐기물 처리장(9926㎡)을 뺀 6만1253㎥ 광산 터에 일반폐기물 매립장까지 만들겠다며 청양군에 사업신청서를 냈다. 당시 주민들은 “광산을 방치한 채 작업을 하는 탓에 지금도 폐기물 처리장 땅바닥에 석면이 포함된 사문석이 굴러다닌다. 폐기물처리업을 중단하고, 석면 광산을 영원히 폐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청양군의 미적지근한 대처에 주민들은 “청양군이 업체의 불법 폐기물 매립과 석면 방치를 알고도 묵인했다”며 충남도 감사위원회에 주민감사를 청구했다.
행정혁신을 강조해온 ‘안희정의 충남도’였기에 기대는 컸다. 큰 기대는 깊은 실망을 남겼다. 도 감사위원회는 주민들이 불법 매립 의혹을 제기한 곳을 굴착조사도 하지 않고 4일 만에 감사를 끝냈다. 안 지사는 직무이행 명령을 내렸지만 그마저도 흐지부지 끝났고, 지금까지 실태조사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도는 청양군에 회신 기한을 2차례 연장해주고도 제대로 된 답을 받지 못했지만, 지방자치법에 규정된 행정대집행은 ‘손’도 대지 않았다. 주민들이 “전국 최초 감사기관 독립을 내세운 충남도의 자기 자랑은 허상”이라며 혀를 찬 까닭이다.
주민과 시민단체의 요구로 ‘청양 강정리 석면·폐기물 문제 해결을 위한 특별위원회’가 만들어졌지만 도와 군의 관련 부서들은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했다.
그 사이 또 한 생명이 스러졌다. 석면폐증 2급으로 투병하던 이기태 할아버지가 피 섞인 기침을 멈추고 2014년 12월14일 오후 세상을 등졌다. 이씨를 떠나보내며 강정리 폐기물 매립장 반대 대책위와 석면광산·폐기물처리업체 공동대책위는 “사람의 생명과 관련된 사안에 무책임한 행태로 일관해온 충남도와 청양군의 자성을 촉구하고 획기적인 변화를 기대한다”고 했다. 성명이 아닌 ‘부고’였다. ‘여민동락’(군민과 함께)을 부르짖던 이석화 청양군수도, ‘도민 행복’을 앞 세운 안 지사도 장례식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나마 강정리 폐기물 매립장 문제를 제대로 본 것은 법원이었다. 2015년 8월 대전지법 제2행정부(재판장 이현우)는 해당 업체가 청양군수를 상대로 낸 폐기물 처리 사업계획서 부적정 통보 처분 취소 소송에서 “이 지역은 석면 검출 지역으로, 원고가 폐기물 매립장 건립 과정에서 대규모 토사를 채굴할 경우 장기간 석면이 노출되고 비산될 위험성이 많이 증가한다”며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2심 재판부 역시 같은 판단을 내렸고, 해당 업체는 대법원 상고를 취하했다.
하지만 강정리 건설폐기물 처리장은 여전히 석면 광산 터 위에서 비산 먼지를 뿜어내고 있고, 처리장 주변 석면 광산 터에는 이곳에서 만들어진 순환토사가 언덕을 이루고 쌓여 있다. 지난해 충남도 감사위원회가 일부 허가 지역 밖에서 잰 것만해도 1340t에 이른다.
업체는 청양군의 승인을 받은 산지복구설계서에 따라 순환토사를 쌓은 것이기 때문에 문제될 게 없다고 버티지만, 대책위는 건설 폐기물이 섞인 순환토지 자체가 불법이라며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청양군은 “충남도가 재심의하고 있으니 군의 손을 떠났고, 어차피 영업정지 처분을 내리면 업체가 소송을 걸 테니 이 문제는 법원이 가려줄 것”이라며 한 발 뺀 상태다.
건설폐기물의 재활용에 관한 업무를 군에 위임한 충남도는 불법폐기물 매립 의혹에 대한 조사 및 수사, 관련 처분 등을 청양군이 하도록 직무이행 명령을 내릴 수 있다. 하지만 충남도는 “청양군이 직무이행 명령의 법적 요건인 ‘위임 사무의 관리와 집행을 명백히 게을리’하는 지를 법적으로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며 팔장만 낀 모양새다.
이에 대해 강정리 특위 위원인 하승수 변호사는 “업체가 여러 불법을 저질러 왔는데 청양군은 그동안 그것을 제대로 지도·감독하지 않았다. 원래 그 사무를 책임져야 하는 도가 업체의 불법 행위에 대해서 군이 제대로 조치하도록 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그러면서 불법이 반복되고 더 커졌다”고 말했다.
주민과 강정리 대책위 등은 결국 강정리 폐기물 문제를 안 지사가 풀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안 지사는 지난해 8월에야 강정리를 방문했다. 석면·폐기물 매립장 문제가 제기된 지 3년 만으로,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지난해 11월1일 주민 20여명이 사흘동안 충남도의 안 지사 집무실 앞에서 밤낮 농성을 할 때도 안 지사는 사전 일정 등을 이유로 나타나지 않았다.
건설폐기물 업체 경계와 밭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사는 김길수(72) 할머니는 “안 지사님께 우리 좀 살려달라고 했쥬. 도지사실까지 찾아 들어갔는디 노인네들 사흘 밤낮 차디찬 도청 바닥에서 잘 때도 지사님 얼굴은 끝까지 못 봤구만유. 그래도 지사님 대통령 되면 그나마 우리 동네일 잘 해결해줄 거라 믿고 싶어유. 우리에겐 희망이 없으니께유”라고 말끝을 흐렸다.
이상선 강정리 석면광산 공동대책위원회 공동대표는 “사태를 해결할 기회가 그동안 얼마든지 있었음에도 안 지사는 업체의 재산권 보호를 운운하며 어정쩡한 태도를 보였고, 결국 상황을 이 지경까지 끌어왔다. 안 지사와 충남도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강정리 사태를 완전하게 해결해야 한다. 대권은 그 다음 문제”라고 말했다.
글·사진 최예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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