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꽉막힌 경산시…장애인 경사로 막무가내 “철거하라”

등록 2017-03-03 14:09수정 2017-03-03 14:35

경산역 근처 호두책방이 설치한 장애인 경사로
통행 불편 크지 않은데 허가 안받았다고 철거 지시
장애인단체 “행정 편의주의…장애인 차별” 비판
경북 경산시가 서점 앞 출입구에 장애인 경사로를 만든 ‘호두책방’에 경사로 철거 명령을 내려 논란이 되고 있다. 호두책방 제공
경북 경산시가 서점 앞 출입구에 장애인 경사로를 만든 ‘호두책방’에 경사로 철거 명령을 내려 논란이 되고 있다. 호두책방 제공
경북 경산시가 한 서점 앞에 설치된 장애인 휠체어용 경사로를 철거하라고 지시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설치 전 도로점용 허가를 받지 않은 경사로가 보행자의 통행에 방해된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해 노력해야 할 지자체가 행정 편의주의에 사로잡혀 오히려 이동권을 해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달 28일 경산역 앞에 자리한 ‘호두책방’ 대표 박아무개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장애인용 경사로를 철거하라?’라는 장문의 글을 게재했다.

게시글에 따르면 27일 경산시 도로철도과 공무원은 서점을 방문해 “서점에서 인도 쪽으로 나와 있는 장애인용 경사로가 통행에 방해된다는 민원이 들어왔으니 철거하라”고 통보했다. 박씨는 “주 출입문에 턱이 있어 휠체어가 드나들기 어렵기에 지체장애인협회 지원을 받아 애써 설치한 경사로다. 상황을 설명해도 담당 공무원은 요지부동이었다. 도로법에 저촉되는 불법 시설물이니 철거를 하든지 점용 허가를 받으라고 했다”고 밝혔다. 이어 “장애인 이동권에 대해 설명해도 ‘자꾸 장애인, 장애인 하는데 그럼 모든 건물에 경사로를 설치해야 하는 거냐’며 오히려 훈계하려 든다. 이번 주 내로 다시 나올 테니 그때까지 해결하라고 했다. 어이가 없었다”고 했다.

박씨는 주민센터와 경산시 사회복지과 담당자 등에게 해결책을 문의했지만, ‘도로철도과 공무원이 철거하라고 했다면 철거하는 게 맞다’는 답변만 반복됐다. 그는 “명색이 장애인 복지를 담당하는 공무원이 상황을 더 알아보고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하려는 최소한의 성의도 보이지 않았다. 그냥 법이 그렇다, 합당한 행정지도란다. 어이없기가 첩첩산중”이라고 답답함을 드러냈다.

2014년 11월 개정된 도로법 시행령 55조10항(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은 ‘장애인용 편의시설 중 높이 차이 제거 시설 또는 주출입구 접근로’를 점용 허가를 받을 수 있는 시설로 명시했다. 이런 시설은 점용료가 감면된다. 장애인 경사로 설치 규정은 ‘안전하고 편리하게 통행할 수 있도록 유효 폭·기울기와 바닥의 재질 및 마감 등을 고려해야 한다’ 정도로, 구체적인 형태를 정해놓은 것은 아니다. 앞서 2013년 대구 중구가 화장품 가게 등 다섯 군데에 설치된 장애인 경사로를 철거하거나 도로 점용료를 내라고 해 논란이 일었고(▶관련 기사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899171 ), 당시 박원석 정의당 의원이 도로점용 허가를 받을 수 있는 시설물에 ‘장애인 경사로’를 포함하는 도로법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이후 개정이 이뤄졌다.

호두책방 출입구에 설치된 장애인 경사로는 너비 1m50㎝, 폭 42㎝다. 경사로 폭을 제외하면 인도의 폭은 2m40㎝ 가량이다. 박씨가〈한겨레〉에 보내온 사진을 보면, 성인 두 명이 마주 보고 걷더라도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 정도의 폭이다.

호두책방 앞에 설치된 장애인 경사로의 측면·정면 모습. 사진 호두책방 제공
호두책방 앞에 설치된 장애인 경사로의 측면·정면 모습. 사진 호두책방 제공
경산시는 ‘절차’를 문제 삼고 있다. 점용 허가를 받지 않고 설치했으니 철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씨가 점용 허가를 받을 수 있는지 문의했지만, 현장을 방문한 경산시 허가민원과 공무원은 어려울 것이라는 답변을 내놨다. 박씨가 전한 경산시의 불허 이유는 “첫째, 가급적이면 도와드리고 싶지만 인도 통행에 방해돼 어쩔 수 없다. 둘째, 해당 경사로에 대한 민원이 있었고 분쟁의 소지가 있다. 셋째, 해당 서점에 허가를 내주면 이 일대에 경사로를 신청하는 모든 가게에 점용허가를 내줘야 해서 안 된다”는 것이다.

경산시는 〈한겨레〉와 통화에서도 같은 취지의 답변을 내놨다. 경산시 허가민원과 쪽은 “장애인 경사로 자체가 불법은 아니다. 하지만 선의의 목적으로 설치한 것이더라도 도로점용 허가를 내야 한다. 도로점용 신청서를 작성하고 제출하면 심사를 하고 가부가 결정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장애인의 보행권을 위해서라면 문턱을 낮추는 방안이 있다. 건물주의 허가를 얻어 문턱을 낮추는 것이 보행자와 장애인 모두에게 편한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결국 점용 허가를 내줄 수 없으니 경사로를 철거하고 문턱을 낮추는 공사를 하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장애인 인권단체들은 “실질적인 차별”이라고 비판한다. 호두책방 장애인 경사로 설치를 지원했던 경북지체장애인협회 경산시지회 관계자는 “관련 법에 정확한 설치 규격이 없다. 호두책방은 경사로가 설치되고도 도로 폭이 2m40㎝가 남는다. 최대한 행인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설치했다. 도로점용 위반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는데, 원칙도 중요하지만 이런 법 적용에는 좀 더 유연해야 할 것 같다. 이런 기준이라면 노점상들은 모두 철거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경산 장애인자립생활센터 박재희 활동가는 “장애인 이동권이 제한된 상황에서 공공기관이 역할은 고민하지 않고 오히려 철거하라고 하는 건 납득이 가지 않는다. 긍정적으로 처리되지 않으면 국가인권위 진정과 행정소송 등 적극적 방법을 강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2013년 ‘대구 동성로 장애인 경사로 철거’에 맞섰던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김시형 활동가는 경산시의 조처가 장애인차별금지법에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장애인 차별금지법 8조에 따르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장애인 등에게 정당한 편의가 제공될 수 있도록 필요한 기술적·행정적·재정적 지원을 해야 한다. 또 차별 받는 장애인 등의 권리를 구제할 책임이 있고, 차별을 실질적으로 해소하기 위해 적극적인 조처를 해야 한다. 이런 위치에 있는 공무원들이 되레 장애인 차별을 만들고 있는 실정”이라고 한탄했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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