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욱씨의 <각목분수>. 평균대 위에 위태롭게 서 있는 소녀 밑의 각목 다발은 체조 소녀가 받아온 훈련의 고단함을 상징한다.
[도시와생활] 제1회 공공예술 프로젝트…23국 73명 작품 전시회
매우 자주, 서울이기 때문에 대접받고, 서울이 아니어서 홀대받는 일들이 있다. 경기도 안양시 안양유원지에서 열리고 있는 ‘제1회 안양 공공예술 프로젝트’는 서울이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주목받을 자격있는 알찬 행사다.
삼성산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고 그 산에서 발원한 맑은 개울 삼성천이 흘러내리는 안양유원지. 등산객들이 하산하여 녹두전과 막걸리 한잔에 흐뭇해지는, 전형적인 등산로 주변 상가촌이기도 하다. 비범한 자연풍광과 평범한 건물들이 얽혀 있는 안양유원지가 최근 거대한 현대미술 실험장으로 변신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미술·조경·건축·디자인 등 각 분야 23개국 73명의 작가가 몰려와 97점의 작품을 쏟아냈다는 것이다. 이중 52점은 다음달 15일 전시가 끝난 뒤에도 영구 전시돼 안양유원지만의 독특한 조형물로서 생명을 얻게 된다.
8일 이곳을 찾아 유원지 일대 10만평에 펼쳐져있는 작품을 돌아봤다. 등산로 입구에 걸쳐있는 다리 위에 길죽한 금속판을 덧대 어린이들의 놀이터로 바꾼 <오징어정거장>(작가 엘라스티코), 70년대 장마 때 산에서 개울로 굴러떨어진 커다란 낙석 위에 자리를 잡은 분수 <물고기의 눈물이 강으로 떨어지다>(호노레도), 산 속에 거울기둥을 세워 매트릭스 같은 공간을 연출한 <거울 미로>(예페 하인), 거대한 흑인 부처상에 그네를 매달아놓은 <춤추는 부처>(질베르 카티), 체조하는 소녀상을 각목 위에 올려놓아 근대화의 의미를 성찰하는 <각목분수>(고승욱) 같은 작품들은 기발한 아이디어로 눈길을 끌었다.
어떤 작품들은 마치 그자리에 예전부터 있었던 듯 장소에 녹아들어 있기도 하다. 서글픔과 천진함, 자비로움이 뒤섞인 독특한 표정의 도자기 군상을 세워놓은 이승하씨의 <정령의 숲>, 우리나라 어디에나 놓여있는 흔한 나무정자 천정에 탱화의 필치로 정성스레 그림을 그린 나빈 라완차이쿨의 작품 등은 볼수록 감동을 준다.
무엇보다도 이 행사를 통해 안양은 앞으로 자랑할 만한 건축작품들도 여럿 갖게 됐다. 포르투갈 출신의 건축가 알바로 시자가 설계한 전시관(2006년 봄 완공), 네덜란드의 세계적 설계그룹 엠뷔아르디뷔(MVRDV)의 <전망대>는 이들이 우리나라에 최초로 설계한 작품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렇다고 꼭 유명 작가를 알아봐야 흥미로운 건 아니다. 안양유원지에서 30년 동안 음식점을 운영해온 유순례(65)씨는 “여기서 이런 일은 처음 있는 건데 참 좋다”며 “손녀도 산을 돌며 구경을 하고오더니 재밌어 하더라”고 만족스러워했다.
이 행사를 총지휘한 이영철 예술감독(계원조형예술대학교 교수)은 “안양은 본래 불교의 극락을 뜻하는 이름인데, 서울에 가려 안양다움이 잘 살아나지 않았다”며 “이런 행사를 통해 시민들이 제 고장의 정체성을 느끼고 자랑스러움을 가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안양유원지는 관악산·삼성산 등산로와 연결돼 있어 서울에서 출발할 경우 1시간30분 정도 산행을 하면 도착할 수 있다. (031)389-5541.
안양/글·사진 이유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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