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정시설인 춘천교도소 안에 ‘건국 60주년 기념’이란 글귀가 새겨진 비석이 서 있다. 이 비석에는 9년 전인 2008년 8월15일 광복 60주년을 맞아 ‘춘천교도소교정협의회·춘천교도소 직원 일동’이 세웠다고 표시돼 있다. 사진 독자 제공
박근혜 정부의 국정 역사교과서 추진으로 ‘건국절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강원 춘천교도소에 1948년 8월15일을 건국일로 규정한 ‘건국 기념비’가 설치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8일 강원 춘천교도소 관계자 등의 말을 종합하면, 교정시설 안에는 3m 정도 크기의 ‘건국 60주년 기념’이란 글귀가 새겨진 비석이 서 있다. 이 비석에는 9년 전인 2008년 8월15일 광복 60주년을 맞아 ‘춘천교도소교정협의회·춘천교도소 직원 일동’이 세웠다고 표시돼 있다. 비석이 건립된 시점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2월에 취임한 뒤 느닷없이 ‘건국 60주년 기념사업회’를 발족하고 그해를 ‘건국 60년’이라고 선포하는 등 광복절을 ‘건국절’로 대체하려고 해 논란을 일으킨 때다. 박근혜 대통령도 지난해 광복절 경축사에서 ‘오늘은 건국 68주년을 맞이하는 역사적인 날’이라고 주장하고 국정 역사교과서를 추진하는 등 건국절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춘천교도소 관계자는 “비석 설립 경위 등 관련 자료는 보존 연한이 지나버려서 찾기 힘들다. 당시 정부 수립 60주년 기념행사를 자체적으로 진행하라고 해서 비석을 세운 것 같다. 무슨 의도를 갖고 건국이란 표현을 쓴 것은 아닐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수많은 수감자와 면회객들이 드나드는 교정시설에 논란이 되고 있는 ‘건국절 사관’을 반영한 듯한 비석이 버젓이 서 있는 게 부적절하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제기된다. 류승열 강원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교도소에서 의도를 갖고 건국 60주년이란 표현을 쓴 것이 아니라고 해도 지금과 같이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선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더구나 교정시설에 이 같은 내용의 비석이 계속 서 있는 것도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역사학계에선 헌법이 전문에서 “우리 대한국민은 (1919년)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밝힌 마당에 1948년을 굳이 건국일로 지정하는 것은 헌법을 부정하는 행위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이에 대해 춘천교도소 관계자는 “건국절은 아직 논란의 여지가 있기 때문에 공공기관에서 자제할 필요가 있다는 것에 공감한다. 문제가 된다면 따로 내용을 수정하거나 문구·표기 자체를 없애는 등의 조치를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박수혁 기자
ps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