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퇴진 세종행동본부가 11일 연 촛불 항쟁 승리 집회에서 참석한 세종시민이 ‘주권자 승리’를 외치며 환호하고 있다.
11일 저녁 세종시 전월산 위로 열나흘 밤 둥근 달이 휘영청 떠올랐다. 호수공원에서는 불꽃이 피어올라 무대 섬을 밝혔다. 이날 오후 6시30분,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을 축하하는 세종시민 잔치가 열렸다. 박근혜 정권 퇴진 세종비상국민행동본부는 1천여 시민들과 떡과 따뜻한 차를 나누고 노래를 합창했다.
이 단체 공동대표인 효림 스님은 “다수대중이 바라는 정의가 실현됐다. 다만 세월호 부분에 대한 판단을 보고 유가족들이 많이 속상해하셨을 것 같아 아쉽다. 아직 진상이 규명되지 않았으니 판단을 보류한 것일 뿐 다음 정권이 박근혜 7시간의 의혹을 철저히 수사해 처벌하면 된다”고 밝혔다.
세종시민은 사회 안정, 정치 신뢰 회복, 친일 청산·과거사 규명, 이명박·박근혜 정권 부역자 처벌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박지선(26·회사원)씨는 “우병우, 문고리 3인방 등 박근혜·최순실의 잔당들을 다 처벌해야 한다. 새로운 대통령은 상처 입고도 민주주의를 지킨 시민을 위로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다영(15·새롬중 2)양은 “헌법재판관들이 위대해 보인다. 사회는 안정이 필요하고 우리에게는 믿음을 주는 리더가 필요하다”고 했다.
아빠와 자전거를 타다 잔치에 나온 심승우(13·연세초 6)군은 “나쁜 짓 많이 한 박근혜 전 대통령을 시민이 쫓아냈다. 친구들도 모두 좋아한다”고 말했다. 심군 아버지는 “출장길에 헌법재판소가 파면하는 중계를 봤다. 선고 초기에는 처음에는 이상하다 싶었는데 최순실과 관련된 직권남용 혐의가 인정된다는 발표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울컥했다”고 심경을 전했다.
이날 축하집회에서는 참석자들이 모두 인사하는 중년 여성이 있어 눈길을 끌었다. 임선호(60·조치원)씨는 원풍모방에 근무하며 노동조합 활동을 하다 1982년 전두환 정권의 탄압에 고초를 겪었다. “시민이 촛불을 들고 있는 걸 보면 눈물이 납니다. 35년 전 저는 삭풍이 몰아치는 들판에 선 촛불이었습니다. 촛불이 많아지고 이어지니 행복합니다.” 임씨는 탄핵 인용 발표를 본 소감을 묻자 “아들·딸 모두 결혼시켜 분가시킨 것 같이 허전했다”고 했다. 그는 겨우내 원풍모방 동지들과 서울 집회에 참석해 ‘박근혜 탄핵’을 외쳤다.
“어제 아침만 해도 마음 졸였는데 소원을 이루니 긴장이 풀어져서인지 오늘도 온종일 구름을 밟고 다니는 것 같아요.” 그는 “현장에서 부르던 노동가를 다시 부르게 돼 반갑기도 했지만, 우리 후손들은 더는 촛불을 들고 노동가를 부르지 않아도 되길 바란다”고 바람을 밝혔다. 세종시의 19번째 촛불집회는 그동안의 노고를 서로 위로하는 시민의 미소로 막을 내렸다.
원풍모방 노조탄압사건의 피해자인 임선호씨가 11일 세종시에서 열린 촛불 항쟁 승리 집회에 참석해 겨우내 함께한 디지털 촛불을 들고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축하하고 있다.
글·사진 송인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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