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애초 철거후 주차장 건설 추진
‘시민군 저항 현장’ 보존여론 비등하자
리모델링 나섰다 총탄 흔적 발견
국과수는 헬기 기관총 탄흔 찾아내
계엄군 야만적 범죄행위 증거 부상
‘시민군 저항 현장’ 보존여론 비등하자
리모델링 나섰다 총탄 흔적 발견
국과수는 헬기 기관총 탄흔 찾아내
계엄군 야만적 범죄행위 증거 부상
“이 곳을 기준으로 부챗살 모양의 탄흔 자국들이 생긴 것이지요.”
지난 19일 오전 김동환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총기안전실장은 광주 금남로 전일빌딩 10층 옛 영상디비사업부 사무실 창가 쪽에 있는 콘크리트 기둥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국과수는 이날 실내에서 발견된 150개의 총탄 자국들이 그 기둥을 중심으로 부챗살 모양으로 퍼져 있어 ‘헬기 기총 소사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헬기가 공중에서 일시 정지한 상태서 기관총을 연달아 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김희송 전남대 5·18연구소 연구교수는 “5·18 당시 헬기 사격은 계엄군의 일반적인 폭력진압과도 다른 야만적인 범죄행위로서, ‘자위권적 차원에서 불가피하게 폭력적인 진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신군부 진압 논리의 허구성을 드러내는 결정적 증거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5·18 총탄 흔적이 발견되기 전까지 애물단지에 불과하던 전일빌딩이 최근 광주의 새로운 ‘5·18 상징공간’으로 거듭나는 데는 사연이 있다. 광주시 출자기관인 광주도시공사는 2011년 경매를 통해 전일빌딩을 138억1165만원에 매입했다. 옛 <전남일보>(현 광주일보) 사옥이던 전일빌딩은 1968년 12월 7층 건물이 들어선 뒤 4차례 증축을 거쳐 10층(지하 1층)으로 완공됐다. 5·18민주화운동의 주요 공간인 옛 전남도청이나 분수대 앞 광장 지근거리에 있는 역사성을 지녔지만, 광주도시공사에겐 낡고 관리비만 많이 드는 골칫거리였다. 광주시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옥외 주차장(지상 2층, 지하 1층)을 짓기 위해 전일빌딩을 철거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전일빌딩을 허물고 주차장을 지으면 되겠어요?” 2013년 5월 임의진 목사(시인)는 <한겨레> 기자와 만나 시의 전일빌딩 철거 방침을 비판했다. “전일빌딩은 시민군이 계엄군의 진압에 맞서 5월27일 옥상에서 최후까지 저항한 역사적 상징공간”이라는 지적이다. <한겨레>는 ‘5·18 감당한 광주 전일빌딩 보존 목소리’(<한겨레> 2013년 5월21일치 12면) 기사를 통해 처음으로 전일빌딩 철거에 반대하는 기사를 보도했다. 광주시는 그 해 7월 “전일빌딩 전면부를 살린다”며 부분존치 방침을 밝혔다. 시가 리얼미터에 의뢰해 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60%가 부분 존치에 찬성한 게 ‘결정적’이었다.
광주시는 지난해 8월 전일빌딩을 공공도서관, 컨텐츠영상미디어센터, 스카이워크(옥상) 등 복합콘텐츠개발센터로 조성하기 위해 리모델링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한 공무원의 끈기가 5·18 탄흔 발견의 ‘끈’이 됐다. 시 문화도시정책관실 한 공무원은 ‘전일빌딩 리모델링 자문위원회’의 한 참석자가 “총탄 흔적 조사가 필요하다”고 한 말을 흘려 듣지 않았다. 그는 국과수에 ‘지방자치단체에 의한 요구조사’라는 규정을 찾아내 전일빌딩 탄흔 정밀조사를 요청했다. 국과수는 광주시의 요청에 따라 지난해 9월부터 지난 3월까지 네차례에 걸쳐 정밀조사를 했다.
총탄 흔적을 찾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다. 국과수 조사팀은 5·18 시민군 등의 조언을 듣고 전일빌딩 7층에 먼저 가 조사를 했다. 하지만 탄흔이 나오질 않았다. 그런데 누군가 “10층에 가보라. 5·18 이후 한번도 쓰지 않는 공간이 있다”고 했다. 국과수 조사팀은 10층 옛 영상디비사업부 사무실(76㎡)에 들어서서 벽면을 보는 순간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고 한다. 벽에 박힌 수많은 총탄 흔적들이 보였기 때문이다. 옛 <전일방송>이 신군부에 의해 강제로 문을 닫은 뒤, 10층 공개홀 옆 사무실은 방치된 채로 수십년 세월을 견뎠다. 다른 층 사무실과 달리 임대도 주지 않았고, 페인트를 칠하는 등 리모델링도 하지 않았다. 광주시 관계자는 “국과수 조사팀이 5·18 진실을 밝히기 위해 꼼꼼하게 조사해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국과수가 지난 1월 1차 조사 결과를 통해 전일빌딩에서 5·18 헬기사격 탄흔이 발견됐다고 발표한 뒤 유력 정치인들의 발길도 이어졌다. 문재인 민주당 후보는 3월20일 광주 전일빌딩을 찾은 뒤 “새롭게 개정되는 헌법전문에 5·18 정신을 기록하겠다”고 약속했다. 앞서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도 1월22일 전일빌딩 10층을 방문한 뒤, “발포명령자를 찾고 역사의 현장인 금남로 전일빌딩 등 보존을 위해 국민의당이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광주시는 앞으로 전일빌딩 10층 활용방안을 찾아나갈 계획이다. 현재 전일빌딩 리모델링을 하기 위해 일시중단했던 기본설계 및 실시설계도 조만간 재개된다. 김석웅 시 문화도시정책관은 “탄흔이 발견된 10층 사무실은 원형대로 보존하고 나머지 공간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에 대해선 관련 단체나 전문가들과 협의해 나갈 방침”이라며 “레지던시나 커뮤니티 공간 등 5·18 정신을 살릴 수 있도록 공간을 활용하는 방안을 찾겠다”고 말했다. 시는 전면뿐만 아니라 후면부 건물도 최대한 남기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광주/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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