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강릉원주대 사학과 학생 70여명이 지난달 7일 경기도 고양시 금정굴 민간인 희생자 유해 발굴 현장을 견학하고 있다. 금정굴인권평화재단 제공
한국전쟁 당시 집단 총살당한 경기도 고양시 금정굴의 민간인 희생자 유해 153구가 1995년 발굴된 지 22년이 지나도록 창고와 추모공원을 떠돌고 있다. 속이 새까맣게 탄 유족들은 유해라도 평안히 잠들 방안을 다음 정부에 기대하고 있다.
2일 금정굴인권평화재단과 고양시의 설명을 들어보면, 2007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금정굴 희생자를 위한 위령시설 설치 등 신속한 후속 조처를 하라고 권고했다. 그러나 과거사 반성에 부정적이었던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10년 동안 진실 규명과 명예 회복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해당 지역인 고양시에선 더불어민주당 소속 최성 시장이 ‘금정굴 역사평화공원 조성’ 공약을 내걸고 두 번이나 당선됐다. 그러나 6·25 때 민간인 학살이 발생한 전국의 지자체 중 유일하게 희생자 지원조례조차 제정하지 못하고 있다. 고양시는 올해 금정굴 유해와 관련해 추모공원 시설 이용료 1천만원만 예산으로 책정했다. 사실상 금정굴 위령 사업에 손을 놓은 상태다.
유족들은 현재 하늘문 추모공원에 임시 안치된 희생자 유골을 일산서구 탄현동 금정굴 현장에 영구 안치하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고양시가 “무연고 사망자는 국가 소유라 유해가 추모공원을 떠날 수 없다”며 반대하고 있다. 고양시 관계자는 “발굴된 유해 153구 중 연고가 확인 안 된 77구는 관리권이 고양시에 있다. 금정굴은 95년 유골이 이장돼 무덤이 아니므로 장사법상 유골이 다시 들어올 수 없다”고 말했다.
고양 금정굴 유족 92명을 포함한 한국전쟁 전후 전국 민간인 희생자 유족 1453명은 지난 4월26일 국회 정론관에서 ‘제2기 진실화해위원회’ 출범을 촉구하며 문재인 후보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다. 금정굴인권평화재단 제공
그러나 금정굴유족회는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유해도 금정굴에서 집단 희생된 것이 분명하므로 모든 유골의 관리권은 유족들에게 있다고 맞서고 있다. 마임순 고양금정굴유족회 고문은 “‘평화공원’을 공약한 민주당 시장은 유족회가 직접 땅을 매입해 안치하려는 것까지 막고 있다”며 “벌써 많은 유족들이 세상을 떠나 더 이상 기다릴 시간이 없다”고 말했다. 유족들은 고양시와 하늘문 추모공원을 상대로 유골인도 청구소송을 낼 예정이다.
금정굴 유족들의 마지막 희망은 정권 교체다. 이와 관련해 한국전쟁 전후 전국 민간인 희생자 유족 1453명은 지난달 26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5명의 유력 후보 중 ‘2기 진실화해위’와 ‘과거사 청산 후속조처’ 등을 공약한 문재인 후보를 지지한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신기철 금정굴인권평화연구소장은 “금정굴 일대 토지의 개발제한이 풀리면 현장 훼손을 막을 수 없다. 하루 빨리 금정굴을 문화재보호법상의 역사유적으로 지정해 보존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경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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