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폭압에 맞선 형 류동운
한신대 2학년 재학중 광주로
“역사가 병들 땐 누군가 십자가 져야”
27일 새벽 끝까지 전남도청 지키다
계엄군 총탄에 희생 5·18묘지 안장
2017년 사드 철회 외치는 동생 류동인
대학 때 5·18 왜곡 항의하다 구속
1985년 성주로 가 돼지 축산업하다
사드 날벼락에 사드반대 투쟁 전면에
“힘들 때면 형님 생각 자주 나죠”
한신대 2학년 재학중 광주로
“역사가 병들 땐 누군가 십자가 져야”
27일 새벽 끝까지 전남도청 지키다
계엄군 총탄에 희생 5·18묘지 안장
2017년 사드 철회 외치는 동생 류동인
대학 때 5·18 왜곡 항의하다 구속
1985년 성주로 가 돼지 축산업하다
사드 날벼락에 사드반대 투쟁 전면에
“힘들 때면 형님 생각 자주 나죠”
“문득문득 형이 떠오르지요.”
‘사드배치철회 성주투쟁위원회’에서 내는 <성주군민소식지 촛불> 발행인 류동인(53)씨는 17일 “이런저런 일로 힘들 때면 형님이 더 자주 생각난다”고 했다. 그의 형 류동운(1961년생)은 한신대 2학년에 재학중이던 1980년 5월27일 새벽 옛 전남도청에서 계엄군의 무력진압에 맞서 총을 들고 싸우다가 산화했다. 국립5·18민주묘지 안 2-45번 묘지가 그의 형이 누워 있는 곳이다. “저와 사이가 좋았고, 형님이 저를 잘 데리고 다녔어요.”
경북에서 태어난 류동인씨는 초·중·고교 생활을 광주에서 했다. 80년 5월을 금남로 등 거리에서 보낸 그는 82년 경북대 화학공학과에 입학해 학생운동을 했다. 그는 “1985년 5월 5·18을 왜곡하는 것에 항의하려고 <대구한국방송(KBS)>에 화염병을 던졌다”고 했다. 방화미수 혐의로 5년형을 구형받고 2년2개월 동안 수감됐다. 경북 성주로 간 것은 1995년이다. 자형이 운영하는 성주의 돼지 농장에서 일하다가 2001년 ‘자립’했다. 지금은 직원 20여명과 함께 돼지 1만8천여마리를 키우는 축산인이다.
그는 형이 “고교 시절부터 조숙했다”고 기억했다. 진보적 성향의 목사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형은 고교 때부터 시를 썼다. 아버지 류연창(90) 목사가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속되던 때 집 안을 수색하던 기관원들은 형의 글을 발견하고 끌고 갔다. 아버지의 강력한 항의로 3일 만에 풀려났다. 1979년 광주진흥고를 졸업하고 한신대에 입학한 것도 ‘진보적 신학을 공부해보라’는 아버지의 권유 때문이었다. 그러던 형은 전두환 신군부의 5·17 전국계엄확대 쿠데타 직후 광주로 왔다.
항쟁에 참여했던 그의 형은 시민군 상황실이 있던 옛 전남도청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주검들 속에서 가족을 찾는 시민들의 명단을 접수하는 일을 했다. 아버지가 80년 5월25일 아들을 찾아가 “집에 들어가자”고 했다. 형 동운씨가 집에 들어와 잠시 쉬고 목욕한 뒤 집을 나가려고 하자 아버지가 붙잡았다. “역사가 병들었을 때, 누군가 역사를 위해 십자가를 져야만 큰 생명으로 부활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아버지의 설교 일부였다. 아버지는 ‘죽음의 길’로 가는 아들을 잡지 못했다.
그의 형의 주검은 옛 망월동 무덤에서 발견됐다. 신군부가 무력으로 시민군 저항 거점인 옛 전남도청 등을 진압하고 난 사흘 뒤였다. 그는 “가매장 상태에서 주검을 확인한 것이지요. 치아를 보고 형님인 줄 알았어요. 이 하나가 도드라지게 났었지요”라고 회고했다. 형은 옛 전남도청으로 가기 전 일기에 짧은 유서를 남겼다. “나는 병든 역사를 위해 먼저 갑니다. 역사를 위해 한 줌의 재로 변합니다. 이름 없는 강물에 띄워주시오.” 형은 그렇게 광주의 ‘빛’이 됐다.
1981년 광주를 떠나 고향의 한 교회로 간 아버지를 따라 동인씨도 대구로 갔다. 그래서 그의 말투엔 ‘영호남’이 묘하게 섞여 있다. 그는 미학을 공부하면서 2012년부터 화가들과 ‘선데이 페이퍼’라는 그룹을 결성했다. 류씨는 “20~30여명의 젊은 작가들과 힘을 모아 작품 전시회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작품 전시공간을 경북 경산, 영천, 대구 삼덕동 3곳으로 늘렸다.
류씨가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지난해 7월 국방부가 성주에 사드를 배치한다고 발표하면서부터다. 주민들은 이날 저녁부터 사드 반대 촛불집회를 시작했다. 지난해 9월 기존 ‘투쟁위’ 해체 무효를 주장하며 꾸린 ‘사드배치철회 성주투쟁위’에서 그는 소식지를 만들고 있다. 성주에선 17일 311일째 사드 반대 촛불집회가 열렸다. 보수적이던 동네에서 매일 100~150여명의 주민들이 촛불을 들고 있다.
그렇게 그는 올 오월을 ‘사드’와 함께 맞고 있다. 그는 “쉽지 않은 줄 알지만 한-미 협상을 통해 사드는 반드시 철회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선거 때마다 옛 새누리당 몰표가 나왔던 성주에서 이번엔 홍준표 후보 지지가 56%에 불과해요. 희망의 단초가 보이는 것이지요.” 힘들 때마다 그는 광주시 남구 구동 신광성결교회 인근에 있는 ‘고 류동운 열사 추모비’에 새겨진 글귀를 떠올린다.
‘누군가 병든 역사를 위해 십자가를 질 때 비로소 생명은 참답게 부활한다.’
광주 성주/정대하 김일우 기자 daeha@hani.co.kr
고 류동운씨 고등학교 때 모습
제37돌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일을 하루 앞둔 17일 오전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에 고 류동운씨가 잠들어 있다. 광주/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고 류동운씨의 동생 류동인(53)씨는 경북 성주에서 축산업을 하다 지난해부터 ‘사드배치철회 성주투쟁위원회’ 소식지 발행인을 맡아 사드 반대운동을 펴고 있다. 류동인씨 제공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