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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너머 3㎞ 북녘땅엔 유행가 가락속 모내기 한창

등록 2017-05-24 17:45수정 2017-05-24 22:01

[현장] ‘남북화해 마중물’ 꿈꾸는 김포 한강하구 가보니
남북 영농철 맞아 분주…남북간 선전방송도 ‘차분’
김포시 ‘한강하구 중립수역’ 평화적 활용방안 추진
북한소 떠내려온 ‘유도’ 지뢰제거·생태조사 등 제안
성탄트리로 갈등빚던 애기봉엔 평화생태공원 조성
지난 19일 경기도 김포시 하성면 애기봉에서 바라본 북한 황해도 개풍군 일대의 모습.
지난 19일 경기도 김포시 하성면 애기봉에서 바라본 북한 황해도 개풍군 일대의 모습.
애기봉에서 바라본 한강 건너편 북녘 땅은 평화로워 보였다.

지난 19일 경기도 김포시 하성면 애기봉(155m)에 설치된 관광용 망원경으로 강 건너 3㎞ 떨어진 황해도 개풍지역을 살펴보니, 농부 3명이 모내기를 앞두고 트랙터를 이용해 넓지 않은 논밭을 갈고 있었다. 남쪽 영농철 풍경과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최전방 접경지인데도 무장한 군인은 보이지 않았다. 한강변에 설치된 철조망은 겹겹이 삼엄하게 둘러친 남쪽과 달리 있는둥 없는둥 헐겁게 보였다. 오랫동안 선박이 출입하지 못한 한강 하구는 모래톱이 물길을 막을만큼 가득 쌓여있었다.

성탄트리 점등식을 싸고 수십년간 남북간 갈등을 빚었던 18m 높이의 등탑은 잘려나가고 터만 덩그라니 남았다. 애기봉 등탑은 불을 밝히면 개성에서도 보여 1971년 설치 이후 대북 심리전 도구로 이용돼왔다. 국방부가 2014년 노후화에 따른 안전부실을 이유로 등탑을 철거해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화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수십년간 대북심리전과 안보관광의 상징이었던 애기봉은 생태평화공원으로 탈바꿈한다. 김포시는 9월 공사를 시작해 2019년까지 총사업비 273억원을 들여 전망대와 전시관, 기념마당 등 남북 평화와 교류협력, 생명을 상징하는 애기봉 생태평화공원을 조성할 계획이다.

‘대한민국 평화문화 1번지’를 선포한 김포시가 새 정부 들어 남북 화해협력사업에 앞장서고 있다. 김포시는 최근 한강 하구 중립수역 생태와 뱃길에 대한 남북 공동조사와 민간 선박 항행을 다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포시는 2015년 하성면 전류리∼시암리∼마근포리∼조강리∼용강리 45㎞ 구간의 한강하구 항행과, 유도 지뢰제거, 생태조사 등을 추진하려다, 국방부의 반대로 하지 못했다. 유영록 김포시장은 “새 정부 들어 남북관계의 첫 물꼬를 틔울 수 있는 곳이 김포”라며 “한강 물길 복원과 한강 하구 평화문화특구 지정 등을 정부에 제안해 남북 화해협력의 마중물 구실을 하겠다”고 말했다.

김포시가 남북 화해협력에 관심을 쏟는 것은 김포가 중심인 한강하구 중립수역이 육상의 비무장지대(DMZ)와 달리 정전협정 1조 5항에 따라 남북한 민간 선박이 공동으로 이용할 수 있어서다. 한강하구 중립수역은 파주시 탄현면 만우리에서 강화군 서도면 볼음도(말도)까지 약 67km에 이른다. 남북은 2007년 10·4 정상선언에서 “한강하구 공동이용 추진”에 합의했으나, 이명박 정부 출범뒤 후속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김포시 한강하구 구간은 애기봉 말고도 한강을 사이에 두고 김포와 황해도 개풍군이 같은 이름을 사용하는 ‘분단 마을’ 조강리와 1996년 7월 홍수로 북한에서 소가 떠내려 온 유도 등 생태·문화·역사·관광 자원이 풍부하다.

조강(祖江·할아버지강)으로 불리는 김포 한강하구는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쳐진 한강과, 한탄강을 끌고 온 임진강, 북한 개성을 지나온 예성강, 김포와 강화 사이를 흐르는 염하를 끼고 있다. 세종실록 지리지에 조강이라는 명칭이 표기되는 등 6.25전쟁 전까지 조강으로 불렸으나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이후 한강 하구로 부르고 있다고 김포시는 설명했다.

조강 포구는 삼국시대 한강하류 쟁탈전의 요충지였고 분단이전 서울을 오가는 수로교통의 길목이자 최대 물류단지, 서해안 해산물 집산지로 알려져 있다. 조강리 건너편은 황해도 개풍군 임한면 조강리가 있다. 강을 사이에 두고 왕래가 잦아 상·하 조강리로 불렸지만 전쟁 이후 왕래가 끊긴 분단 마을이 됐다. 조강리 마을회관은 지난해 경기도가 ‘평화누리길’ 게스트 하우스 1호점을 열었다.

애기봉에서 바라본 김포 한강하구 모습. 왼쪽의 작은 섬이 북한 소가 떠내려와 5개월간 살았던 유도다.
애기봉에서 바라본 김포 한강하구 모습. 왼쪽의 작은 섬이 북한 소가 떠내려와 5개월간 살았던 유도다.
조강의 상징적 장소로 1996년 8월 홍수로 북한에서 소가 떠내려 와 화제가 됐던 18만여㎡의 작은 섬 유도가 있다. 김포시는 유도로 떠내려 와 5개월 넘게 고립된 소를 구조해 통일염원의 상징인 ‘평화의 소’로 이름 지어 현재 후손 수십마리가 김포와 제주 곳곳에서 사육되고 있다. 통진읍 가현리에서 평화의 소를 기르고 있는 이진해(64)씨는 “처음엔 평화의 소에 국민적 관심이 컸는데 지금은 시들한 상태”라며 “남북관계가 좋아져 평화의 소를 앞장세워 북에 평화 메시지를 전달할 날이 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유도 인근은 멸종위기종인 매화마름의 군락지이고 천연기념물 205호인 저어새 도래지이기도 하다. 김포시는 유도 부지를 매입해 ‘평화의 섬’으로 지정하고, 남북이 교류하고 소통하는 평화공간으로 조성할 계획이다.

유도 앞 용강리 뒷산엔 대북방송 스피커가 설치돼 매일 대북 ·대남 선전방송 공방전이 울려퍼진다. 이날은 남쪽에선 점잖은 어조로 북 인권문제와 김정은 독재체제를 비판했고, 북은 최신 유행가인 듯한 생소한 노래로 응수했다. 마을 주민은 “매일 선전방송이 나오지만 신경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포시는 오는 31일 제주포럼에서 ‘새 정부 아래에서의 한강하구 중립지역 평화적 활용 전략’ 토론회를 연다. 글렌세겔 이스라엘 하이파대학 교수가 이스라엘과 요르단 간 ‘홍해해양평화공원’ 조성 사례를, 서주석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이 ‘한강하구 중립지역 평화적 활용방안’을 발표한다. 김포시 관계자는 “한강하구에 대한 생태 자원조사와 함께 남북 민간선박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뱃길이 열린다면 남북관계 개선의 획기적인 돌파구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글·사진 박경만 기자 mania@hani.co.kr

해마다 성탄트리 점등 문제로 남북간 갈등을 빚었던 애기봉 등탑이 철거된 자리. 김포시는 이곳에 생태평화공원을 조성할 계획이다.
해마다 성탄트리 점등 문제로 남북간 갈등을 빚었던 애기봉 등탑이 철거된 자리. 김포시는 이곳에 생태평화공원을 조성할 계획이다.

북한 소가 떠내려온 유도 전경. 김포시는 유도를 매입해 평화의 섬으로 지정할 계획이다.
북한 소가 떠내려온 유도 전경. 김포시는 유도를 매입해 평화의 섬으로 지정할 계획이다.

한국전쟁 이전까지 서울을 오가는 수로교통의 요충지였던 경기도 김포시 조강포. 강 건너 북녘에도 같은 이름의 조강리가 있다.
한국전쟁 이전까지 서울을 오가는 수로교통의 요충지였던 경기도 김포시 조강포. 강 건너 북녘에도 같은 이름의 조강리가 있다.

유도에 떠내려온 북한 ‘평화의 소’ 후손들이 김포와 제주 곳곳에 나뉘어 사육되고 있다.
유도에 떠내려온 북한 ‘평화의 소’ 후손들이 김포와 제주 곳곳에 나뉘어 사육되고 있다.

평화누리길 게스트 하우스 1호점이 들어선 조강리 마을 전경.
평화누리길 게스트 하우스 1호점이 들어선 조강리 마을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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