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용주 전 광주트라우마센터장의 보안관찰 사례가 유엔에 보고됐다. 조작 간첩단 사건으로 14년동안 감옥에 갇혀 있었던 그는 자신의 일상을 3개월마다 경찰에 신고해야 하는 보안관찰 대상이다. 강재훈 기자
보안관찰법에 저항하고 있는 강용주(55·의사)씨의 사례가 유엔인권이사회에 보고됐다.
유엔 특별분야 협의 지위를 인정받은 재단법인 ‘진실의 힘’은 지난 7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35차 유엔인권이사회에서 ‘집회·결사의 자유 특별보고관’에게 “강씨에 대한 검찰의 보안관찰법 위반 기소는 재단법인 진실의 힘에 대한 왜곡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점을 알렸다고 9일 밝혔다.
이날 열린 유엔인권이사회 회의엔 국내 시민·인권단체에서 4명이 참석했으며, 활동가 강은지씨가 강씨의 사례를 보고했다. 진실의 힘은 1985년 ‘구미 유학생 간첩단 조작 사건’에 연루돼 14년간 복역한 강씨가 1999년 2월 특별사면으로 출소한 뒤에도 18년 동안이나 보안관찰이라는 ‘보이지 않는 감옥’에 갇혀 있다는 점을 구체적으로 적시해 보고했다. 강씨의 보안관찰처분은 모두 7차례 갱신됐고, 강씨는 보안관찰 신고의무를 위반한 혐의로 두차례 기소돼 각각 50만원, 150만원의 벌금을 부과받았다. 개인의 기본권 침해를 이유로 신고의무를 거부해온 강씨는 지난해 12월 일터에서 연행돼 몇시간 동안 경찰 조사를 받은 뒤 지난 3월 보안관찰법 위반으로 기소돼 서울중앙지법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지난 7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인권이사회에서 진실의 힘이 강용주씨의 보안관찰 사례를 보고하고 있다. 진실의 힘 제공
진실의 힘은 “경찰은 ‘진실의 힘 이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고문피해자 치유를 빙자하여 국가보안법 위반 전력자들과 접촉’하고 있는 점을 강씨의 보안관찰 기간 갱신 사유로 들었다”며 “하지만 진실의 힘 설립자들을 ‘국가보안법 위반 전력자’라고 하는 것은 사실관계의 왜곡이며, ‘재심’이라는 대한민국의 엄연한 사법절차를 부정한 꼴”이라고 지적했다.
진실의 힘은 강씨가 2004년 전남대 의대를 졸업하고 가정의학과 전문의가 된 뒤 고문·국가폭력 피해자의 치유를 돕기 위해 2009년 설립한 재단법인이다. 군사독재 시절 고문과 국가폭력에 의해 간첩으로 만들어진 이들이 재심을 통해 무죄를 받아낸 뒤 국가의 불법행위에 대한 책임을 물어 받아낸 손해배상금의 일부를 출연해 만들었다. 국가폭력과 고문 피해자들을 위한 치유 활동이 알려지면서 고문과 치유 문제가 한국 사회의 주요한 인권 이슈가 될 수 있었다. 진실의 힘이 지난 4월 유엔 경제사회이사회(ECOSOC)로부터 특별협의 지위를 받은 것도 전문성이 탁월한 비정부기구(NGO)로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강씨는 국내 최초의 국가폭력 트라우마 치유센터인 광주트라우마센터의 초대 센터장(2012~16)도 지냈다.
진실의 힘은 “재심을 통해 죄가 없다는 판결을 받은 이들이 다시는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마음에서 만들었으며, 다른 피해자들의 재활을 돕고 진실규명을 지원하고 있다. 무죄를 만든 이들과 만난 것이 왜 죄가 되어야 하느냐”고 호소했다. 진실의 힘은 또 “강씨의 활동이 ‘고문피해자 치유를 빙자’했다는 경찰의 주장도 틀렸다”고 지적했다. 강씨 자신이 고문생존자로서 누구보다 그 실상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심리 치유 시스템을 만들어 고문·국가폭력 피해자들에게 의료서비스를 무상으로 제공할 수 있었다. 진실의 힘은 “법무부는 기본적인 사실관계조차 왜곡시킨 경찰의 동태보고서에 기초해 ‘재범 위험성’이 있다며 보안관찰을 갱신했다. 허위사실에 터잡은 검찰의 기소는 지금이라도 철회되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광주/정대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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