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철도시설공단이 지난 19일 경기 화성시 향남새도시 서해선 9공구 발안 주공 및 우림필유아파트 앞에서 굴착공사에 나서자 주민들이 공사 중단을 요구하면서 포클레인에 매달린 채 온몸으로 공사를 막아내고 있다. 서해선 향남구간 지하화 추진위 제공
“이럴 거면 향남새도시를 왜 개발했어요?”
인구 8만여명이 사는 경기 화성시 향남새도시의 방축리에서 21일 만난 주민 박영란(52)씨가 분통을 터트렸다. 인근에 살던 그는 향남새도시 개발로 집과 땅이 수용돼 방축리로 이사했다. “국책사업이니 해야죠. 그런데 주민들 내쫓듯 보상해서 새도시를 지었으면 최소한 살게는 해줘야지. 도시를 두 동강 내고 철도 소음과 진동 속으로 주민들을 내몰 바에는 (선로를) 반지하화라도 해달라는 거예요.”
서해선 향남구간은 국토교통부 산하 한국철도시설공단(철도공단)이 공사중인 경기 화성 송산~충남 홍성을 잇는 서해선복선전철 90.1㎞ 가운데 9공구 10.5㎞짜리 구간이다. 향남1·2지구 사이로 기차가 지나가는 높이 13m짜리 교각 66개가 들어선다. 현재까지 24개의 교각이 들어서는 등 공정률은 8.1%다.
■ 우회 노선이 관통 노선으로 바뀐 까닭 정부는 4조946억원을 들여 서해선을 2020년 완공할 계획이다. 승객용 41회, 화물용 22회 등 하루에 63회 기차편이 운행된다. 향남지구 노선은 2007년 계획 당시만 해도 향남새도시 1지구 외곽을 돌아 지나도록 돼 있었다. 한국철도시설공단 관계자는 “예비타당성 조사에서 기획재정부는 향남1지구 위쪽으로 우회하는 노선을 최적으로 제시했다. 공사비가 적고 비용편익분석(B/C)이 높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국토부가 2009년 노선이 1·2지구를 관통하는 것으로 바꿨다. 주민 접근성과 편의성이 나아진다는 게 근거였다. 하지만 막상 주민들은 분진과 소음, 교각에 의한 나쁜 미관과 도시 단절을 우려한다. 인근 주민들은 “하루하루가 전쟁터”라고 하소연한다.
‘서해선 향남구간 지하화 추진위원회’ 김인순 사무국장은 “화성시청 옆 뉴타운을 지나는 10공구 노선은 아직 조성되지 않은 뉴타운과의 접촉 최소화를 이유로 뉴타운 외곽으로 노선을 바꾸면서, 향남새도시만 1·2지구 사이로 더 나쁘게 노선을 바꾸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20일 서해복선전철 지하화를 주장하는 주민들이 한국철도시설공단의 공사에 대비해 공사 현장에 모여 있다. 화성/홍용덕 기자
■ 환경영향평가 부실 의혹 환경부는 서해선 공사를 앞둔 2012년 철도공단의 홍성~송산 복선전철 환경영향평가서 초안에 대한 검토의견에서 “향남1·2지구를 관통하지만 주변 주거시설 등에 미칠 영향 예측이 고려되지 않아 적정성을 판단하기 어렵다”고 했다. 또 “주민의견을 수렴하고 공사 및 운영 시 예상되는 환경적 사회적 영향을 파악하고 주요 영향이 있을 경우 해당 구간 터널화 등 대안을 모색하라”고 했다. 철도공단은 2013년과 2015년 서해선 환경영향평가서를 환경부에 냈는데, 공사와 완공 뒤 열차운행 때 발생하는 소음과 진동 등에 대한 세부 조사는 미흡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특히 환경영향평가서는 사후환경영향조사와 환경질 조사 대상에서 3만여명의 주민이 입주한 향남1지구를 빠뜨렸다. 환경운동가 출신의 이홍근 화성시의원은 “노선을 바꿨으면 제대로 환경영향을 평가해야 한다. 이건 잘못된 환경영향평가서다”라고 말했다.
■ 오락가락하는 한국철도시설공단 주민들의 민원이 들끓자 국민권익위원회는 지난 4월7일 현지 합동조사를 벌여 철도공단과 화성시에 향남지구 지하화 타당성 조사와 환경영향평가를 다시 하라고 권고했다. 철도공단은 “지하화 타당성 조사를 하겠다”고 하더니 한달 뒤 ‘2010년에 이미 했다’고 말을 바꿨다. 하지만 화성시 한 관계자는 “제대로 된 타당성 조사는 별도 용역과 별도 보고서가 나와야 하는데 이것(철도공단이 2010년에 낸 것)은 민원에 대한 자체 검토 보고서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철도공단은 주민 반발이 커지자 화성시에 일반 철도인 서해선에는 역사용 지하 정류장 설치가 불가능하고, 지하화 때 드는 4천억원의 추가 비용은 화성시가 부담하라고 통보했다. 철도공단 관계자는 “화성시가 돈을 내면 지하화든 반지하화든 할 수 있다. 다만 돈을 내도 (교각 등) 이미 공사한 것을 철거하는 매몰비용만 1천억원이 든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이에 맞서 공사중지 가처분신청을 내기로 했다. 화성시도 이달 말 2억원을 들여 서해선 향남지구의 환경영향 재평가에 들어간다. 장영호(51) 서해선 향남구간 지하화 추진위원장은 “한국철도시설공단이 구정 이후부터 보상을 서두르고 3, 4월 들어서는 토요일에도 공사를 강행했다. 철도가 사드(THAAD)인가, 공사 중지를 못 하게 서둘러 공사를 하다니…. 지하화나 반지하화 등의 근본 대책이 마련되기까지는 협박성 공사를 중단하라”고 말했다.
화성/홍용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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