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헌재 ‘사유재산 침해’ 결정
2020년 7월1일부터 공원 지정 해제
국토부, 대안으로 ‘민간공원사업’ 허용
11개 광역단체 65곳서 사업 관심
전국서 건설사들 몰리며 개발 바람
소송전 등 사업자 선정 과정 과열
주민 “공공개발 방식 추진” 요구
당국 “막대한 예산 필요” 난색 표명
2020년 7월1일부터 공원 지정 해제
국토부, 대안으로 ‘민간공원사업’ 허용
11개 광역단체 65곳서 사업 관심
전국서 건설사들 몰리며 개발 바람
소송전 등 사업자 선정 과정 과열
주민 “공공개발 방식 추진” 요구
당국 “막대한 예산 필요” 난색 표명
“투기장이 돼버렸어요. 왜 ‘시영아파트’를 짓지 않으려고 할까요?”
28일 오후 광주광역시의회 5층 회의실에서 민간공원 개발 관련 토론회를 지켜보던 장화선(48) 광주전남녹색연합 에너지위원장은 “도시공원 터에 공영개발 방식으로 주택공급을 추진하지 않고 모두 민간에 맡긴 것은 잘못”이라고 말했다. 광주시는 오랫동안 도시공원으로 묶이고도 공원이 들어서지 않은 ‘장기 미집행 도시공원’ 25곳 중 10곳을 민간공원 특례사업 대상으로 선정한 뒤 1단계로 4곳에 대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도시자연공원으로 묶여 있는 4곳에 민간 건설사가 30%의 터에 아파트 단지를 짓고, 나머지 70%를 공원으로 조성하는 방식이다. 장 위원장은 “민간공원 개발이 불가피하더라도 공공성을 최대한 확보해야 하는데, ‘건설사 투기장’으로 전락했다”고 꼬집었다.
■ 도시공원에 아파트 건설, 왜? 도시공원에 아파트가 들어설 수 있게 된 것은 ‘공원 일몰제’(장기미집행 도시계획시설 일몰제) 때문이다. 정부가 도시자연공원(이하 도시공원)으로 지정한 934㎢ 가운데 미집행 면적은 55.2%인 516㎢에 달한다. 이 곳은 2020년 7월1일부터 도시공원 지정이 해제(일몰)돼 건축행위 등의 규제가 사라진다. 1999년 장기미집행 도시계획시설이 사유재산권을 침해한다는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전국의 지방정부와 자치단체는 방대한 규모의 도시자연공원으로 묶인 사유지를 사들일 수 있는 재정적 여력이 없는 실정이어서 ‘도시의 허파’가 마구잡이로 개발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는 진작부터 제기됐다.
이에 국토교통부는 민간공원 조성 특례사업이라는 카드를 들고 나왔다.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면적 5만㎡ 이상의 도시공원에 70% 이상을 공원으로 조성해 기부채납하고 나머지 30% 미만에 비공원 시설을 설치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다. 자치단체에서 도시공원 터를 매입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불가피안 ‘대안’이라는 긍정론도 나왔다. 국토교통부가 지난해 6월 민간공원 조성 특례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가이드 라인’을 제시한 뒤부터 전국에서 민간공원 조성 붐이 일었다. 28일 국토교통부 취합 결과, 전국 11개 광역자치단체 65곳에서 민간공원 조성 특례사업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 건설사간 이전투구 건설사들은 도시공원 지정구역 중 알짜배기 땅에 대규모 아파트를 지으면 대박이 날 것으로 판단하고 사업권을 따기 위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우선협상 대상자 선정 결과에 불복한 건설사가 자치단체를 상대로 소송에 나서고 있다.
인천시가 추진하는 한 근린공원 특례사업에 도전했던 ㅋ건설은 선정결과가 부당하다며 시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인천시는 특례사업 우선협상자를 선정하기 위한 평가에서 ‘입찰자격 제한 등 징계’를 배점에 넣었다. 징계를 받지 않은 업체엔 5점을, 3회 이상 업체엔 0점을 주도록 했다. 앞서 여러차례에 걸쳐 징계를 받은 ㅋ건설은 징계 횟수를 0으로 기재했다. 국토교통부가 2015년 8월 ㅋ건설 등 32개 대기업의 공공기관 입찰 참가자격 제한을 해제하는 조처를 한 게 배경이다. ㅋ건설은 인천시가 특별사면을 인정하지 않고 징계를 8회로 처리해 ‘허위기재’라는 이유로 이 항목 평가에서 0점을 주자 “상대업체와 똑같은 처지인데도 불공정하게 처리됐다”며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인천시 쪽은 “입찰절차가 아니고 특별사면을 받았다고 징계사실 자체까지 소멸된 것이 아니어서 정상적인 평가”라고 해명했다.
충남 천안시 노태 근린공원에서도 사업자 선정을 둘러싼 공정성 시비로 소송이 진행되고 있다. 천안시 서북구 성성동 노태산 일대 25만5158㎡를 개발하는 이 사업은 민간 사업자가 용지의 73%를 공원으로 조성하고 27%를 아파트 등으로 개발할 계획이다. 천안시가 애초 2위 업체가 낸 투자의향서를 확정된 금융참여로 간주해 점수를 높여주는 바람에 졸지에 우선협상대상자 1순위에서 2순위가 된 업체가 소송을 제기했다. 천안시는 1·2심 모두 패소해 현재 대법원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사업자 선정에 공무원의 이권개입이 있었다는 의혹까지 일어 경찰조사까지 이뤄졌지만 내사종결됐다.
천안시의회에선 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라는 요구가 나온다. 안종혁 천안시의원은 “민간개발로 진행될 경우 공원이 개인 사업자가 지은 시설물의 정원처럼 쓰일 수 있다. 노태산 주변에 다른 녹지가 없는 상황이니 차라리 이 사업을 원점 재검토해서 녹지의 가치를 살리는 방식으로 공공개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안치견 천안시의회 총무환경위원장 역시 “민간개발보다는 공공개발 방식으로 공원 부지를 이용해 주민들에게 필요한 공공시설을 마련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녹지의 가치가 점점 커지는 상황에서 성급하게 민간개발을 할 이유가 없다는 주장들이다.
하지만 천안시는 공원 개발에 필요한 막대한 예산을 감당할 여력이 없어 민간개발이 불가피하다는 태도다. 윤웅진 천안시 공원조성팀 주무관은 “노태산 공원 예정지 대부분이 사유지다. 주변이 개발돼 인구가 늘면서 활용 민원이 많은데 필요한 예산이 막대해 시로선 공공개발할 여력이 없다”고 말했다.
■ 사업자 선정 평가 기준 두고 잡음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공정하지 못한 기준으로 입길에 오르는 경우도 있다. 광주시는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하기 위한 평가 기준에 사업안전성 명목으로 민간공원 토지를 미리 사놓은 업체에 높은 배점을 주고 있다. 이같은 기준은 언뜻보면 공정한 것 같지만 여기엔 함정이 있다. 한 도시계획 전문가는 “토지를 가장 많이 확보한 주관사의 토지 면적을 기준면적으로 삼아 비율을 계산해 상대평가로 점수를 계산한 것은 문제”라며 “심하게 이야기하면 1개 건설사만 민간공원 부지 중 1㎡를 사놓고 다른 건설사가 사놓지 않았다면 이 건설사가 최고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이 때문에 민간공원 특례사업 예정지 터에 이미 확보한 땅의 비율에 따른 가점을 주는 등의 방식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각에선 “일부 건설사들은 일찌감치 도시공원 특례사업 예상지 토지를 매입하고 계약하는 데 안간힘을 쏟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광주시는 민간공원 조성 특례사업에 공기업 참여를 사실상 배제해 빈축을 사기도 했다. 시는 지난 4월 낸 ‘민간공원 특례사업 제안요청서’ 가운데 9개 항목으로 이뤄진 제안서 평가 및 배점기준(105점 만점)에서 15점 만점의 재무구조와 경영상태, 5점 만점의 사업시행의 안정성 등 두 항목에서 지방공사나 공단은 단독참여할 때만 만점을 줄 수 있다고 적시했다. 광주도시공사는 시에 국토부 지침대로 평가방식을 바꿔야 한다며 ‘반발’했다. 광주도시공사가 민간기업과 컨소시엄을 이뤄 참여할 경우 서민을 위한 아파트 단지 개발 사업이 가능할 수도 있으나 시는 외면했다. 광주시 쪽은 “출자·출연기관에 특혜를 줬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지만, 앞으로 2단계 사업에선 도시공사가 참여할 수 있도록 지침을 수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경희 광주환경운동연합 정책실장은 “민간공원 조성 특례사업에서 특헤시비를 없애려면 우선사업자 선정 지침을 만드는 과정부터 시민사회, 행정, 전문가 등 3자가 참여해야 한다”며 “시가 어떤 비전과 방침을 갖고 있는지 시민들에게 공개하며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광주 천안/정대하 최예린 기자 daeha@hani.co.kr
광주시 서구 풍암동 중앙근린공원은 도심의 허파구실을 하는 곳이지만, 도시계획시설에서 해제되기 전 국가공원으로 지정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광주시 제공
서울에서 산책하기 좋은 곳으로 소문이 난 `서대문구 `안산 자락길'도 도시계획시설로 묶여있지만 2020년 6월30일 해제된다. 이병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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