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제일 신기한 건 아침에 눈을 뜨면 또다시 하루가 시작되는 것. 그리고 하루의 시간은 모두 내 것이라는 거야.”
가난한 영화감독이 딸에게 해주고 싶은 말들이 사진 속 판다의 입을 통해 책으로 묶여 나왔다.
2012년 영화 <해로>로 대종상 신인감독상을 수상한 영화감독 최종태(52)씨는 최근 일본의 사진가 타카우지 타카히로가 6년간 찍은 판다 사진에 자신이 10년간 모은 글을 담아 <리리, 오늘도 안녕!>(푸르름 출판)이란 책을 펴냈다.
‘리리’는 일본 도쿄 우에노 공원에서 기르는 판다의 이름이다. 2011년 도쿄에 사는 32살의 평범한 직장인인 타카우지는 업무차 우에노 공원에 갔다가 중국에서 막 이사온 판다 ‘리리’와 ‘신신’을 만났다. 이후 그는 6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집에서 1시간 거리인 동물원에 들러 리리와 신신을 촬영해 ‘매일판다’란 개인블로그에 1800회 이상 연재하고 있다.
최씨가 리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어느날 우연히 타카우지의 사진을 보고서 판다의 천진하고 신비로운 이미지에 매료되면서부터다. 단번에 마음이 사로잡힌 그는 판다의 모습이 자신이 지향하는 삶의 가치관과 어울린다고 생각해 책에 담기로 했다. 마침 그에겐 ‘아빠의 와인창고’란 제목의 블로그에 10년간 모아온 1천개의 글이 출판을 기다리고 있었다.
“10년 전 지인들과 식사를 하면서 누구는 자식에게 물려줄 재산으로 보석을 모으고 누구는 고급 와인을 모은다는 말을 듣고 자괴감에 빠졌어요. 가난한 영화감독인 나는 딸들에게 무엇을 물려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살면서 깨달은 삶의 지혜가 담긴 글을 주기로 결심했죠.”
우에노 공원에서 만난 타카우지는 6년간 찍은 200만장의 사진 가운데 1만2천장을 건네주었고, 최씨는 그 중 300장을 골라 책이 탄생했다.
책엔 소설 <말라 비틀어질 때까지> <모베상> 등을 쓴 작가이기도 한 그가 딸에게 속삭이듯 건네는 말글이 240쪽에 빼곡이 담겨있다. 이를테면 “너의 삶은 소중하니까 너무 힘들게 괴롭히지 마. 소중한 만큼 가볍게…”라든가, “삶이 축제가 되려면 자기 앞의 생은 자연의 순리에 맡기고 내 시간의 주인이 되어 좀 더 조용히, 좀 더 느리게 살 수 있어야 해. 그러면 세상도 훨씬 아름답고 평화롭게 될거야” 등이 그렇다.
책속의 판다는 늘 시간에 쫓겨 바쁜 현대인에게 말한다. “인간은 시간을 관리하면서부터 시간이라는 거미줄에 걸린 파리 신세가 되었어. 자기들이 통제한다고 믿는 시간에 의해 정작 그들이 통제되고 있으니 말이야.” 그런가 하면 “사람들은 삶의 목표가 행복이라고 하지. 하지만 그들이 원하는 것은 행복이 아니라 욕망의 충족이지. 사람들은 숲과 강을 모두 갖고도 만족할 줄 몰라”라며 끝없이 욕망을 추구하는 인간들을 나무란다. 또 “빠르고 급한 것은 전쟁처럼 세상을 파괴하고, 느림과 게으름은 평화와 사랑을 가져다준다”고 말한다.
지난 15일 경기도 고양시 한양문고 주엽점에서 열린 북콘서트에서 만난 최 감독은 “이 글은 갇힌 판다의 시선으로 바라본 우리밖 사람들 이야기”라며 “책에 부제를 붙인다면 ‘행복한 판다, 우울한 사피엔스’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피엔스는 수많은 대형동물을 멸종시키고 지구를 장악했지만 그들의 삶은 지금 행복한가요? 판다와 만남을 통해 자연과 어울리는 삶, 나만의 시간을 갖는 삶의 여유를 되찾기를 바랍니다.”
글·사진 박경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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