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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청 노동자가 떳떳하게 노조 하는 날까지 투쟁”

등록 2017-07-20 11:03수정 2017-07-20 21:47

현대중 사내하청 전영수·이성호씨
20m 높이 교각 고공농성 100일 넘겨
그사이 계절 바뀌고 새 정권 들어서

“현대중, 하청노조원 ‘블랙리스트’로 관리”
노동기본권 보장과 블랙리스트 철폐 요구
“경영 어렵다고 하청노동자 소모품 취급 안돼”
지난 19일 고공농성 100일을 맞은 전영수·이성호(왼쪽부터)씨가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며 결의를 새로이 다지고 있다. 전영수·이성호씨 제공
지난 19일 고공농성 100일을 맞은 전영수·이성호(왼쪽부터)씨가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며 결의를 새로이 다지고 있다. 전영수·이성호씨 제공
“처음엔 골바람 추위 때문에 밤에 잠을 못 이뤘는데 요즘엔 푹푹 찌는 열기 때문에 잠을 설칩니다.”

‘하청 노동기본권 보장’과 ‘블랙리스트 철폐’ 등을 요구하며 울산 북구 성내고가차도 20m 높이 교각 위에서 20일로 101일째 고공농성을 벌인 금속노조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 조직부장 전영수(42)씨와 대의원 이성호(47)씨는 장기간의 고공농성 중 겪는 어려움을 이같이 털어놨다. 이들이 지난 4월11일 새벽 5시께 교각에 올라간 뒤 그새 계절이 바뀌었다.

이들이 올라간 교각 위와 상판 사이에는 한 사람이 누우면 양쪽 옆이 꽉차고 위아래로만 약간의 여유가 있는 공간 2곳과 한 사람이 겨우 누울 수 있는 공간 1곳이 있을 뿐이다. 이들은 연일 35도를 웃도는 폭염으로 달아오른 콘크리트와 철제 난간 틈바구니의 푹푹 찌는 열기에다 쉴 새 없이 달리는 차량의 소음과 진동, 먼지 때문에 밤에 잠을 자다가도 여러차례 깨지만 “현장에서 동료 노동자들이 겪는 고통을 생각하며 견딘다”고 했다. 최근엔 하청지회에서 밧줄을 이용해 작은 손선풍기도 올려주고 시원한 생수도 올려줘 그나마 땀을 식히는 데 요긴하게 쓴다.

이들의 하루일과는 새벽 5시20분 잠자리에서 일어나 스트레칭과 제자리뛰기 등의 가벼운 운동을 하면서 시작된다. 아침 6시30분~7시30분과 오후 5시~6시30분이면 교각 밑에 모이는 출퇴근길의 동료 노동자와 시민사회단체 회원들과 함께 ‘연대선전전’을 펴고, 틈틈히 윗몸일으키기와 팔굽혀펴기 등 운동과 독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활동 등을 한다. 세 끼 식사는 하청지회에서 근처 식당을 지정해 주문한 음식을 올려줘 해결한다.

이들은 “동지들이 처음엔 하루 두끼 도시락을 올려줬는데, 요즘엔 ‘농성 오래 하려면 잘 먹어야 한다’며 식당을 통해 하루 세끼 집에서 먹듯이 메뉴를 올려준다. 지난 초복과 식당이 문닫는 휴일엔 동료 조합원들이 닭백숙, 초밥, 돈가스같은 특식도 올려준다”고 말했다. 이씨는 “농성 중 건강진단에서 별 이상소견은 없었지만 틈틈히 운동하고 부족한 잠도 보충하며 건강에 신경쓰고 있다. 명상이나 독서, 음악감상 등으로 스트레스도 푼다”고 말했다. 그동안 교각 위에는 의료진과 김종훈 국회의원이 이들의 건강검진과 블랙리스트 조사를 위해 한차례씩 다녀갔다.

지난 19일 고공농성 100일을 맞은 이성호·전영수(왼쪽부터)씨가 교각 농성장에서 아래쪽을 향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신동명 기자
지난 19일 고공농성 100일을 맞은 이성호·전영수(왼쪽부터)씨가 교각 농성장에서 아래쪽을 향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신동명 기자
이들이 농성 100일을 넘기는 사이 정권이 바뀌었다. 이들은 “대통령이 바뀌었다고 당장 나아질 거라는 기대는 하기 어렵다. 수년간 이 나라를 지배해 온 기득권 세력과 재벌들이 완강히 버텨,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때 사내하청·간접고용에 대한 원청의 사용자 책임 강화와 사내하청·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 보장을 공약했지만 말 그대로 공약으로만 그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털어놨다. 이들은 현대중공업 계열 현대미포조선 사내하청 노동자들로, 속했던 업체가 폐업하면서 일자리를 잃었다. 같은 업체 70여명의 노동자 대부분이 다른 업체로 고용 승계됐지만 이들을 포함한 4명은 노조 조합원이라는 이유로 배제됐다.

지난 19일 금속노조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가 고공농성장 아래 도로변에 설치한 각종 펼침막과 고공농성 100일을 알리는 조형물. 신동명 기자
지난 19일 금속노조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가 고공농성장 아래 도로변에 설치한 각종 펼침막과 고공농성 100일을 알리는 조형물. 신동명 기자
이들은 교각에 오르기 전 하청업체에 이력서를 냈지만 원청 현대중공업이 직접 막아 채용이 불가하다는 답변만 받았다. 이들은 “현대중공업이 하청지회 조합원들을 ‘블랙리스트’로 관리하며, 구조조정과 물량감소를 이유로 고용승계에서 배제하고, 개별 구직을 통한 취업조차 막는다”고 하소연했다. 이어 “이 때문에 하청 노동자들에게 노조가 두려움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하청 노동자들이 노조 하는데 무슨 대단한 ‘용기’ 같은 게 필요 없는 세상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전씨는 “지금도 현장 상황은 달라진 게 없다. 지난해 1분기 이후 현대중공업이 다섯 분기 연속 흑자를 내고 수주사정도 좋아졌다는데, (하청)업체 폐업으로 노동자들은 계속 쫓겨나고 있다. 현대중공업 사쪽은 하청 내부 문제로만 돌리며 원청이 관여할 사항이 아니라고 하지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꼴”이라고 꼬집었다. 이씨는 “그래도 여력 있는 원청이 영세한 하청업체를 대신해 고용안정기금을 출연하면 많은 하청 노동자들이 일자리와 생계를 지킬 수 있다. 경영이 어렵다고 하청 노동자를 소모품 취급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별 주목받지 못하는 농성을 장기간 이어가지만, 출퇴근길 동료 노동자들의 연대와 시민·학생들의 응원에 큰 힘을 얻는다. 하청 노동자가 제대로 대접받고 떳떳하게 노조 할 수 있는 그 날까지 싸움을 멈추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울산/신동명 기자 tms13@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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