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완주군 고산명에서 열리는 제1회 너멍굴영화제 포스터
가로등도 없고 휴대전화도 잘 터지지 않는 산골에서 별을 보며 영화를 감상하고 캠핑도 할 수 있는 청년들의 특별한 영화제가 열린다.
전북 완주로 귀촌한 도시 청년들이 의기투합해 9월2일 저녁 완주군 고산면 율곡리 외율마을에서 ‘궤도를 벗어나다’라는 주제로 제1회 너멍굴영화제를 연다. 너멍굴은 고라니와 멧돼지가 함께 뛰노는 이곳 골짜기 이름이다. 영화제를 이끄는 중심에는 청년들이 있다. 집행위원장을 맡은 윤지은(28)씨는 지난 2월 서울에서 완주로 귀촌했다. 대학 때 농활을 다니면서 농촌생활을 동경해오다, 지난해 먼저 완주로 귀농한 대학 과친구 진남현(28)씨를 뒤따라 이곳에 정착했다. 여기에 영화감독을 꿈꾸는 후배 허건(26)씨가 귀촌대열에 합류했다. 또 디자이너 이세정씨와 다큐멘터리 제작을 맡는 조재근씨 등 20~30대 귀농귀촌 청년·직장인·대학생 12명이 산골영화제를 이끌고 있다.
영화제 장소는 진씨가 귀농하면서 구입한 너멍굴의 토지 6611㎡(2000평) 가운데 1983㎡(600평)를 장비를 동원해서 조성했다. 멀리서 오는 관객들이 야영이 가능하도록 준비하고 있다. 영화제가 끝나면 여기에는 양파·마늘을 심을 예정이다. 한마디로 별빛 가득한 자연에서 펼쳐지는 텐트촌 독립영화제인 셈이다.
상영작품은 프로그램을 맡은 허건씨가 독립영화 감독들을 섭외해 3편을 선정했다. 생식을 하는 엄마와 딸 이야기를 다룬 정한진 감독의 <잘 먹고 잘 사는 법>(24분), 서울 서촌의 옛도심 재편과정에서 원주민이 내몰리는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를 이슈화한 백고운 감독의 <표류인>(22분), 자해공갈단 이야기를 엮어 돈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이승주 감독의 <야근수당>(27분) 등이다. 감독과의 대화와 캠프파이어도 준비한다.
완주군 마을이야기를 전하는 소식지 <완두콩> 올해 8월호에 실린 너멍굴영화제 이야기.
이들은 이번 첫해 너멍굴영화제 준비과정을 다큐에 담아 내년 제2회 영화제 때 내놓을 방침이다. 영화제 준비 소식을 들은 완주군에서는 200만원을 지원했다.
윤 집행위원장은 “독립영화를 상영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아 이를 고민하다가 직접 영화제를 개최하게 됐다. 남들이 만들어 놓은 판에 참가하는 영화제가 아니라, 청년들이 무모해 보이지만 직접 도전해 영화제를 산골에서 준비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 앞으로도 계속 영화제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임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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