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과학수사연구원·창원해경·고용노동청 등이 21일 오전 에스티엑스조선해양 선박 탱크 폭발사고 현장에서 현장감식을 하고 있다.
선박용 탱크가 내부 폭발해 작업중이던 사내하청 노동자 4명의 목숨을 앗아간 에스티엑스(STX)조선해양㈜ 사고와 관련해 당시 탱크 내부의 유독가스 배출시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유족들은 이를 근거로 이번 사고를 “사고가 아닌 살인”이라고 주장했다. 희생된 사내하청 노동자 4명만 일하던 현장엔 반드시 두도록 돼 있는 감시인조차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21일 오전 사고 현장을 둘러본 사고 희생자 유족 대표단은 이날 오후 빈소가 차려진 경남 창원시 ㅈ병원에서 에스티엑스조선해양 쪽 관계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유독가스 배출시설 문제를 제기했다. 유족들은 “밀폐된 탱크 안에 들어가 내부 벽면에 스프레이로 페인트를 바르는 도장작업을 하던 작업자 4명에게 유독가스를 밖으로 강제로 뽑아내는 배기관은 생명줄과 같다. 그런데 현장 확인 결과 배기관 곳곳에 구멍이 나 있었고, 테이프로 끊어진 부분을 아슬아슬하게 이어놓은 곳도 있었다”고 밝혔다. 유족들은 “유독가스를 제대로 배출했다면 배기관 안쪽에 그을음이 묻어 있었을 텐데, 현장의 배기관은 깨끗했다. 이것이 배기관이 제구실을 하지 못했다는 증거”라며 현장사진을 공개했다.
유족들은 사고가 난 탱크 안에 설치된 배기관로 3개 중 외부기계와 실제 연결된 것은 1개뿐이라는 점도 회사 쪽이 애초부터 안전관리에 부실했다는 근거로 제시했다. 이어 “배기시설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고도 안전에 문제가 없다며 작업을 지시한 에스티엑스가 이번 사태의 책임자이자 작업자의 생명줄을 끊는 살인을 저지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탱크 안 유독가스를 밖으로 배출하는 배기관. 파손된 곳곳을 테이프로 막아놓은 것은 물론, 아예 끊어진 곳도 보인다. 에스티엑스 폭발사고 유족 대표단 제공
이에 대해 에스티엑스 쪽은 “20일 아침 현장 안전시설을 15~20분간 점검해 문제없음을 확인하고, 이날 아침 8시35분께 작업허가서를 내줬다. 배기관로도 살펴봤는데, 왜 곳곳이 파손됐는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합동수사본부장인 김태균 남해지방해양경찰청 수사정보과장은 “탱크 안 작업등 4개, 송풍기 2개 등에 연결된 전선의 벗겨진 부분이 합선돼 불꽃이 튀면서 탱크 안 가스가 폭발했을 가능성을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합동수사본부 조사에서는 사고 노동자들이 쓰던 손전등에 전기 등 불꽃이 일지 않는 ‘방폭(폭발 방지)’ 기능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현장에서 발견된 손전등이 방폭 손전등이 아닌 것으로 보고받았다”고 밝혔다. 산업안전보건 기준에 관한 규칙은 “가스폭발 위험장소에서 전기·기계를 사용하는 경우 방폭성능을 가진 방폭 구조 전기기계·기구를 선정해 사용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조선소에서 20년 넘게 하청 도장공으로 일하는 ㄱ씨는 “개인 손전등에서 스파크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데도, 방폭 손전등이 가격이 비싸 개인용으로 지급된 것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폭발사고가 일어난 선박 아르오(RO)탱크 내부. 내부가 불타 완전히 새까맣게 변해 있다. 창원해양경찰서 제공
에스티엑스조선해양 대표단(오른쪽)과 폭발사고로 숨진 노동자 4명의 유족 대표단이 21일 오후 빈소가 차려진 경남 창원시 ㅈ병원에서 첫 회의를 열었다.
에스티엑스조선 원청이나 하청업체는 작업상황을 감시할 감시인도 탱크 외부에 배치하지 않았다. 산업안전 보건 기준은 탱크와 같은 밀폐공간 작업 때 감시인을 반드시 두도록 한다. 에스티엑스 현장책임자는 “안전관리자가 평일에는 10여명 근무하지만, 휴일에는 3명이 당직근무를 한다. 일요일이었던 이날은 안전관리자가 사고 선박을 확인한 뒤 오전 10시50분께 다른 선박으로 옮겨갔다”고 말했다. 고용부는 이날부터 에스티엑스조선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에 착수했다.
창원/최상원 기자, 박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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