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8시 지나” 배수펌프장 관리자 막아 가동 2시간 지연
주민들 “1년 농사 망칠뻔”…군, 긴급차량 신속통과 약속
민통선 지역 내비게이션도 작동안돼 구급차 통행등 불편
주민들 “1년 농사 망칠뻔”…군, 긴급차량 신속통과 약속
민통선 지역 내비게이션도 작동안돼 구급차 통행등 불편
경기도 파주시 민간인출입통제지역(민통선) 출입을 관할하는 군이 비가 많이 와서 농경지 침수가 우려되는 긴급 상황 때도 길목인 통일대교 통과를 출입 규정을 이유로 통제해 민통선 주민들이 생활에 불편을 겪고 있다.
29일 육군 1사단과 민통선 마을 주민들의 설명을 들어보면, 경기북부지역에 집중호우가 내린 지난 24일 오후 민통선 지역 농경지가 물에 잠길 위기에 놓이자 한국농어촌공사 직원이 민통선 안에 있는 군내면 백연리 배수펌프장을 가동하려고 통일대교 출입을 신청했지만 군이 저지해 한동안 실랑이를 벌였다. 농어촌공사 직원 강아무개씨는 출입증을 소지하고 이날 오후 9시30분께부터 통일대교 앞에서 대기했으나 군은 ‘규정상 정해진 시간인 오후 8시가 넘었다’는 이유로 출입을 막았다. 군은 민통선 안 마을인 통일촌 주민이 직접 인솔하겠다고 검문소에 도착한 오후 11시30분께야 출입을 허용해 배수펌프장 가동이 2시간 가량 지체됐다.
이날 파주지역은 평균 38㎜의 강수량을 기록했으나 민통선 주변은 장단면 56㎜, 적성면 89㎜ 등 폭우가 쏟아져 호우주의보가 내려진 상태였다.
민통선 주민들은 농경지 침수와 인명 피해가 우려되는 급박한 상황인데도 군의 대응이 유연하지 못했다며 강력 항의했다. 군은 규정상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맞서다가 항의가 거세지자 지난 28일에야 연대장 등 간부들이 장단출장소를 찾아 주민들에게 사과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했다.
민통선 마을의 한 주민은 “지금은 벼 이삭이 막 피기 시작한 때라 침수가 되면 치명적이어서 농어촌공사 직원이 한 밤중임에도 물을 빼러 왔던 것”이라며 “다행히 피해가 발생하지는 않았지만 조금만 더 지체했으면 1년 농사를 망칠 뻔 했다”고 말했다. 이에 군 관계자는 “출입을 막은 것이 아니라 신분 확인을 위해 지연됐던 것”이라며 “앞으로는 긴급을 요하는 차량은 신속하게 통과할 수 있도록 출입절차를 개선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한편, 민통선 주민들은 군이 작전상 이유로 목적지까지 길을 안내하는 차량 네비게이션의 작동을 막고 휴대전화 통화불능 지역도 많아 위급 상황때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이에 대한 개선도 군에 요구하고 있다. 한 주민은 “응급환자가 발생해 구급차를 불렀는데 내비게이션이 안되고 길거리에서 물어볼 사람도 없다고 해 마중 나가서 데리고 와야 했다. 온라인에 각종 지도 정보가 넘치는 세상에서 내비게이션 길 안내를 막는게 군에게 무슨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박경만 기자 ma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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