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시 석란정 화재현장에서 소방관들이 불을 끄고 있다. 사진 강원도소방본부 제공
강원 강릉 석란정 화재로 순직한 소방관 2명에 대한 애도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이번 사고가 소방인력 부족이 부른 ‘예견된 인재’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18일 소방청과 강원도 소방본부의 말을 종합하면, 지난 17일 강릉 석란정 화재로 숨진 이영욱(59) 소방위는 당시 화재 현장에서 현장지휘관 겸 현장안전점검관 임무를 동시에 한 것으로 확인됐다. 현장안전점검관은 화재를 진압할 때 폭발과 붕괴, 추락 등 위험요인을 사전에 파악해 소방관 안전을 지키는 마지막 ‘안전핀’ 구실을 한다. 이영욱 소방위는 화재진압 임무가 우선인 현장지휘관과 소방관 안전을 우선 챙겨야 하는 현장안전점검관 역할까지 1인2역을 한 셈이다.
현장안전점검관 제도는 화재 진압 때 소방관 사고가 잇따르자 2009년 도입했다. 소방공무원 보건안전관리규정에도 출동대마다 1명씩 현장안전점검관을 지정해 현장지휘관을 보좌해 현장 대원들의 안전을 확보하는 역할을 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제도는 시행된 지 8년이 됐지만 소방인력 부족으로 현장안전점검관은 전국 각 소방서에 1명(통신 등 다른 업무 겸직)만 배치돼 있다. 그나마 낮에 화재가 발생하면 주간 근무를 하는 현장안전점검관이 화재진압 대원들과 함께 화재 현장으로 출동해 위험요인을 먼저 살피고 화재진압을 담당하는 현장지휘관과 상의한 뒤 화재 현장 진입 등을 결정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사고와 같이 화재가 밤에 발생하면 현장에 출동한 소방관들이 현장지휘관과 현장안전점검관 구실을 동시에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소방관들은 “현장안전점검관이 있으면 소방관 안전을 먼저 생각해 현장지휘관에게 진입 불가 등의 의견을 제시할 수 있지만 야간에 불이 나면 화재진압 임무가 우선인 현장지휘관이 현장안전점검관 역할도 동시에 하다 보니 소방관 안전보다는 화재진압을 우선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사고 발생 1년 전인 지난해 9월 국가인권위원회까지 나서 ‘현장안전점검관 제도’가 형식으로 운영된다며 당시 국민안전처에 개선방안을 마련하라고 권고할 정도다. 당시 국가인권위가 공개한 전국 소방관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현장안전점검관이 별도로 지정돼 운영되는지’에 대한 질문에 응답자의 절반이 넘는 52.5%가 ‘인력 부족으로 현장안전점검관이 안전관리 업무와 현장 소방활동 업무를 병행한다’고 응답했다.
당시 국민안전처는 국가인권위의 권고에 ‘2017년 새 소방인력 산정기준을 마련할 때 현장안전점검관 정원 신설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소방청에 확인 결과, 국가인권위가 권고한 지 1년이 지나도록 현장안전점검관 정원 신설은 여전히 ‘추진 중’이다. 소방청 관계자는 “당시 대통령 탄핵 등의 문제 때문에 (정원 신설 등의) 검토가 예정보다 지연됐다. 현장 소방대원들의 안전을 위해 현장안전점검관은 꼭 필요하다. 소방서마다 전담인력을 3명씩 배치해 3교대가 가능하도록 현장안전점검관을 점차 늘릴 계획”이라고 해명했다. 전국 소방인력은 4만4792명으로 이는 법정 필요인력 6만1966명의 72.2%에 불과한 실정이다.
박수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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