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알고 지내던 여성을 살해한 뒤 옷을 벗겨 범행을 위장하려한 ㄴ씨가 취재진의 질문에 고개를 숙인 채 걸어가고 있다.연합뉴스 제공
충북 청주의 한 하천 둑 풀숲에서 전라 상태의 주검으로 발견된 20대 여성을 살해한 범인은 성범죄로 위장하려고 여성의 옷을 벗게 한 것으로 드러났다. 피해자와 친자매처럼 지내던 자신의 여자친구도 범행 현장에 함께 있었지만 말리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충북 청주 흥덕경찰서는 21일 평소 알고 지내던 ㄱ(22) 씨를 둔기 등으로 때리고 목 졸라 살해한 혐의(살인 등)로 ㄴ(32) 씨의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현장에서 범행을 지켜본 혐의(살인방조)로 ㄴ 씨의 여자친구 ㄷ(21) 씨의 구속영장도 함께 신청했다.
ㄴ 씨는 지난 19일 새벽 1~2시 사이 청주시 흥덕구 옥산면 한 하천 옆 밭에서 둔기 등으로 ㄱ 씨를 마구 때리고 목 졸라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ㄴ 씨는 ㄱ 씨를 때리다 ㄱ 씨의 의식이 흐릿해지자 성폭행 범죄 피해자로 위장하려고 옷을 모두 벗게 했으며, ㄱ 씨의 신원을 숨기려고 휴대전화·지갑 등을 챙겨 달아난 혐의도 받고 있다. ㄴ 씨는 경찰 조사에서 “숨진 ㄱ 씨가 자신의 아이를 내가 학대했다고 주변에 험담하는 등 모욕적인 말을 해 화가 났다. 성범죄 피해자로 보이게 하려고 옷을 벗게 했다”고 진술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20일 벌인 ㄱ 씨의 사체 조사에선 성폭행 사실이 확인되지 않았다.
ㄴ 씨의 여자친구인 ㄷ 씨도 범행 현장에 동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평소 ㄷ 씨는 숨진 ㄱ 씨와 동향으로 10여년 동안 친자매처럼 지내온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ㄷ 씨는 남자친구 ㄴ 씨가 ㄱ 씨를 마구 때리고 목 졸라 살해할 때 범행을 지켜보면서도 말리지 않은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ㄴ·ㄷ 씨가 ㄱ 씨와 험담 문제를 놓고 말다툼을 벌이다 ㄱ 씨를 승용차에 태워 범행 현장으로 이동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소한 말다툼이 잔인한 범행으로 이어졌다”고 밝혔다.
ㄱ 씨는 지난 19일 아침 6시 40분께 청주시 흥덕구 옥산면의 한 하천 둑 풀숲에서 옷을 입지 않고 숨진 채 발견됐다. 현장에 ㄱ 씨의 원피스·속옷 등이 널브러져 있었지만, 휴대전화 지갑 등 소지품이 나오지 않아 경찰은 신원 확인에 어려움을 겪었다.
폐회로 텔레비전(CCTV) 화면이 범인 검거의 일등 공신이었다. 경찰은 휴대전화 통화 내용을 통해 ㄱ 씨가 숨지기 전인 이날 새벽 0시 20분께 ㄴ 씨 등과 통화한 사실을 확인했다. 이어 마을 주변에 설치된 폐회로 텔레비전 화면 분석을 통해 이날 새벽 0시 53분께 ㄱ 씨를 태운 ㄴ 씨의 승용차가 범행 현장에 들어갔다가 1시간 30여분 뒤 빠져나가는 것을 확인하고 ㄴ 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특정했다. 이후 경찰은 ㄴ 씨의 연고지 등을 중심으로 포위망을 좁혀갔다.
경찰은 범행 24시간 만인 이날 새벽 1시 20분께 강원 속초의 한 숙박시설에 은신해 있던 ㄱ 씨를 검거했다.
오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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