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서울중앙검찰청 ○○○수사관이라고 합니다.”
지난달 31일 오후 1시께 부산에 사는 ㄱ(26)씨에게 낯선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이 남성은 “당신 통장이 ‘대포통장’이 돼서 범죄에 이용되고 있다. 예금이 위험할 수 있으니 현금으로 찾아서 우리 기관에 맡기는 것이 안전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전화를 끊으면 공범으로 보일 수도 있다”며 ㄱ씨가 바로 전화를 끊지 못하도록 했다.
반신반의 하는 ㄱ씨에게 이 남성은 “못 믿겠으면 아이피(IP)로 본인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로 검색을 해보라”며 숫자로 된 아이피를 불러줬다. ㄱ씨는 이 남성이 시키는 대로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을 열어 주소창에 아이피를 입력했다. 곧 ‘서울중앙검찰청’이라고 적힌 화면이 떴다. 아래에는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하도록 돼 있었다. ㄱ씨가 자신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하자 사건이 접수됐다는 내용의 화면이 떴다.
놀란 ㄱ씨는 은행에 가서 1200만원을 인출했다. 그리고 이 남성이 시킨 대로 대구의 한 지하철역으로 갔다. 지하철역에 도착하니 정장을 입은 한 남성이 “금융감독원에서 왔다”며 다가왔다. 이 남성은 목에 신분증을 걸고 있었다. 이 남성은 ㄱ씨에게 현금을 건네 받은 뒤 서류를 꺼내 작성하도록 했다. 서류에는 금융감독원이 ㄱ씨의 현금을 잠시 보관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서류를 건넨 이 남성은 ㄱ씨가 건넨 돈을 들고 사라졌다. 나중에 안 것이었지만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을 당한 것이었다.
신고를 받고 수사를 시작한 대구 동부경찰서는 8일과 9일 ㄱ씨의 돈을 받아 달아난 전화금융사기 조직의 ‘현금 수거책’인 김아무개(32)씨와 ‘현금 송금책’인 중국인 2명을 사기 혐의로 체포했다. 경찰은 이들로부터 사기를 당한 다른 피해자 9명을 더 찾아냈다. 이들이 지난달 16일부터 지난 8일까지 10명에게 이런 수법으로 가로챈 돈은 1억7000여만원이었다. 경찰은 중국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이 전화금융사기 조직의 ‘총책’을 찾고 있다.
스마트폰으로 아이피를 검색하도록 하는 이런 전화금융사기 수법은 주로 젊은 여성을 겨냥한 것이다. 이번에 경찰이 확인한 피해자 10명도 모두 24~35살 여성이었다. 젊은 여성이 스마트폰 사용에 익숙한 점을 노린 것이다.
김충일 대구 동부경찰서 지능팀장은 “피해자들은 처음 전화를 받았을 때는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아이피를 입력해 뜬 가짜 창이 진짜라고 착각할 정도로 정교하게 만들어져 속아 넘어갔다. 알지 못하는 번호로 각종 공공기관이라며 전화가 와서 송금이나 현금인출을 요구한다면 100% 보이스피싱이므로 일단 전화를 끊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대구/김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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