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중구 용두산공원에 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 부산시 제공
1592년 음력 4월13일 조선을 침략한 왜군은 반나절 만에 부산진성을 함락했다. 임진왜란 발발 당시 조선 수군은 무력했다. 부산 수영구에 있던 경상좌수영의 좌수사 박홍은 울산 쪽으로 군대를 물렸다. 경상우수사 원균은 소수의 병력을 모아 전라좌수영의 이순신 장군에 합류했다.
왜군은 부산을 중심으로 전쟁 물자를 수송했다. 왜군은 부산 동구 범일·좌천동 일대에 증산왜성을, 그 근처에 자성대왜성을, 중구 중앙동 옛 부산시청사 쪽에 박문구왜성을, 영도구 쪽에 추목도왜성을 잇따라 세웠다. 왜군은 조선 수군의 공격에 대한 방어와 해상 보급로 확보를 위해 왜성 4개를 쌓아 유기적인 방어체계를 구축했다. 왜군은 부산을 임진왜란 개전부터 1598년 일본으로 패퇴하기 전까지 병력 보충, 전쟁 물자 보급, 일본 본토와의 연락을 위한 전진기지로 삼았다.
조선 수군은 왜군의 보급선을 끊기 위한 해상 봉쇄 작전을 펼쳤다. 1592년 8월 전남 여수항에서 출진한 전라좌수사 이순신 장군은 전함 166척을 이끌고 부산 낙동강 하구로 향했다. 같은 해 9월1일 이순신 장군은 부산 가덕도를 지나 영도 쪽으로 나아갔다. 당시 부산포에는 왜군 함선 430여척이 정박해 있었다. 이순신 장군은 전함을 일렬로 길게 늘어서게 한 뒤 포구로 돌진했다. 기습에 당황한 왜군은 배를 버리고 뭍으로 올라가 조총을 쏘며 저항했다. 이순신 장군은 전함의 화포로 왜군 함선 100여척을 격침하거나 불태웠다. 부산포해전이다.
남해안 제해권을 장악하려던 왜군은 1592년 7월 한산도 앞바다에서 벌어진 이순신 장군과의 해전에서 대패한 데 이어 조선 침략 전진기지인 부산 앞바다에서까지 참패하자, 조선 수군과의 전투를 피했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명령서(주인장)에서 “조선 수군이 공격하면 지역 상황을 검토해 신중히 대처하고, 조선 수군에 먼저 전투를 걸지 마라”고 지시했다.
부산시는 1980년 부산포해전에서 승전한 날을 양력으로 환산해 10월5일을 ‘부산시민의 날’로 지정했다. 올해로 425돌을 맞은 ‘부산시민의 날’ 기념식은 26일 시청 대강당에서 열렸다. 올해 시민의 날이 추석 연휴에 포함되자 기념식을 앞당긴 것이다. 다음달 광안리해수욕장에선 ‘부산불꽃축제’가, 11월엔 사직실내체육관에서 ‘부산생활 체육축전’이 펼쳐진다. 각 기초단체들도 시민이 참여하는 다양한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김영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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