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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축테마파크로 위장한 소싸움장 반대합니다”

등록 2017-10-04 11:29수정 2017-10-04 16:11

정읍시, 지역경제 활성화 목적 테마파크 추진
최은희씨, 분뇨 오염 등 들며 6월부터 1인시위
지난 9월27일 오전 전북 정읍시청 앞에서 주부 최은희씨가 소싸움장 설치를 반대하며 비가 오는 가운데서도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소싸움도박장 건립반대 정읍시민행동’ 제공
지난 9월27일 오전 전북 정읍시청 앞에서 주부 최은희씨가 소싸움장 설치를 반대하며 비가 오는 가운데서도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소싸움도박장 건립반대 정읍시민행동’ 제공
“가축테마파크로 위장한 소싸움장 노(NO)”, “쇠똥구리와 더불어 사는 진짜 가축테마파크 예스(YES)”

전북 정읍에 사는 주부 최은희(49)씨는 지난 6월5일부터 정읍시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한다. 평일 출근길에 나와 9월29일로 83회째를 맞았다. 아침 8시에서 9시까지 1시간 동안 벌인다. 처음에는 오전 7시30분부터 진행했으나 중학교 3학년 아이의 등교문제로 부득이 30분을 줄였다.

그가 원하는 것은 단순하다. “백로가 날아오는 내장산 자락 맑은 물인 정읍천을 300마리(150마리씩 2차례 행사) 싸움소 분뇨로 더럽히지 말라”는 것이다. 그는 틈날 때마다 산책하는 정읍천 상류에 소들의 싸움장이 생긴다는 소식을 지난 5월 우연히 접했다.

그 즈음 냇가가 포크레인으로 파헤져지고, 산밑에 돌더미가 잔뜩 쌓인 모습이 목격됐다. 다른 공사를 위해 벌어진 전경이라고 하지만, 최씨는 소싸움장이 들어서면 아름다운 환경을 즐길 권리가 박탈되는 게 너무 안타깝다.

소싸움장이 들어서는 장소는 전국적으로 인기가 많은 캠핑장 근처다. 이팝나무가 정갈하게 있고, 아이들이 잔디밭에서 공을 차며 놀고, 다정한 연인들이 자전거를 타며 어우러지는 곳이다. 이런 평화로운 휴식처 주변에 소들이 비명에 가까운 울음소리를 내며 억지로 싸우는 소싸움장이 생긴다니 최씨는 모든 게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이다.

정읍 축산테마파크 최종 용역보고회가 열린 지난 6월1일 최은희씨가 정읍시에 전달한 편지. 최은희씨 제공
정읍 축산테마파크 최종 용역보고회가 열린 지난 6월1일 최은희씨가 정읍시에 전달한 편지. 최은희씨 제공
정읍시는 지역경제 활성화를 내세우며 소싸움경기장을 포함한 축산테마파크를 추진한다. 정읍시는 내장산 자락 부전동 일대 터 6만530㎡에 사업비 113억원을 들여 축산테마파크를 조성할 계획이다. 전체면적 중에서 소싸움장 등이 들어설 다목적경기장이 1만여㎡이고, 나머지 5만여㎡가 축산체험장·전통가축마당과 조경면적 등으로 구성된다. 지난해 터 매입이 끝나 현재 기본설계 단계이고 내년 말에 완공할 방침이다.

정읍지역 축산단체들도 추진에 찬성한다. 이 단체들은 “정읍의 사계절 관광지화에 기여하고 주민소득과 고용창출 효과가 클 것이다. 해당시설은 소싸움뿐만 아니라 다양한 공연도 할 수 있는 다목적경기장으로, 도박장이라는 반대 쪽의 주장은 지나치다”고 밝혔다.

쟁점은 크게 두가지다. 소싸움장이 도박장이라는 지적과 대회 때 소가 머무는 공간을 허가없이 설치할수 없는 배출시설로 볼 것이냐는 문제제기다. 시민단체 등으로 꾸려진 ‘소싸움도박장 건립반대 정읍시민행동’은 도박장이라고 주장한다. 이 단체는 “소싸움 경기장은 우권을 사서 베팅을 하는 도박시설로 즉각 건립을 멈춰야 할 것이다. 소싸움은 전통민속을 핑계로 한 동물학대일 뿐이다. 소싸움장 운영으로 발생한 지자체의 재정위기는 이미 경북 청도군과 경남 진주의 사례에서 증명됐다. 재정건전성이 좋지 않은 정읍시가 막대한 예산을 들여 이 사업을 강행하는 것은 무책임한 결정”이라고 지적했다.

권대선 정읍시민행동 공동대표는 “정읍시 주장대로 소싸움 도박장을 추진하는 게 아니라면, 소싸움 도박장(우권발매 경기시행) 허가권을 반납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따졌다. 최씨는 정읍시민행동에서 아무 직책도 맡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정읍시는 “정읍과 경북 청도만 우권발매 경기시행 허가권을 가져 희소가치가 있고, 당장 취소를 하면 다시 허가받기 어려워 반납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싸움소가 임시로 머무는 계류장을 배출시설로 볼지에 대한 문제는 조금 복잡하다. 현행 가축분뇨법과 ‘정읍시 가축분뇨의 관리 및 이용에 관한 조례’에는 계류장이 실험·의학 용도로만 쓰도록 돼 있다. 가축이 분뇨를 배출하는 시설은 별도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실제로 대회가 열리면 싸움소가 계류장에 닷새 이상 머물며 분뇨를 배출할 수밖에 없어 사실상 실정법 위반이라는 게 정읍시민행동의 주장이다. 시가 환경문제를 고려하지 않은 밀어붙이기식 행정을 한다는 것이다. 정읍시민행동은 1년에 일주일씩 두 차례 소싸움대회를 열어 각각 150마리의 소가 내놓을 분뇨량을 계산하면, 소 6마리가 1년 내내 배출한 양과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시민 최은희씨는 매일 1인 시위가 끝나면 시청 전광판 아래 피켓을 세우고 인증샷을 찍어 페이스북에 일지를 작성한다. 최은희씨 제공
시민 최은희씨는 매일 1인 시위가 끝나면 시청 전광판 아래 피켓을 세우고 인증샷을 찍어 페이스북에 일지를 작성한다. 최은희씨 제공

정읍시는 지난 9월 초 사업추진을 위해 기본계획 승인요청을 전북도에 냈다. 전북도는 “지역발전을 위해서는 찬성하는 입장이지만, 민원해결이 우선”이라며 보완을 요구했다. 급기야 정읍시는 이와 관련 계류장을 배출시설로 볼 것인지 여부에 대한 유권해석을 환경부에 요청해 최근 회신을 받았다. 내용은 “가축분뇨법 제2조에 따른 배출시설이란 가축사육으로 인해 가축분뇨가 발생하는 시설·장소 등으로 1년에 2회 이내 각 5일간 한시적으로 운영하는 소싸움장 및 임시계류시설은 배출시설로 보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는 것이다.

지난 9월21일 전북도청 브리핑룸에서 ‘소싸움도박장 건립반대 정읍시민행동’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정읍시민행동 제공
지난 9월21일 전북도청 브리핑룸에서 ‘소싸움도박장 건립반대 정읍시민행동’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정읍시민행동 제공
축산테마파크를 반대하는 ‘소싸움도박장 건립반대 정읍시민행동’ 회원들은 돌아가며 정읍시내에서 1위 시위를 하고 있다. 최은희씨 제공
축산테마파크를 반대하는 ‘소싸움도박장 건립반대 정읍시민행동’ 회원들은 돌아가며 정읍시내에서 1위 시위를 하고 있다. 최은희씨 제공
최씨는 새벽에 집주변을 산책하고 나면 그 신선함에 돈으로 살 수 없는 매혹을 느낀다. 하지만 그 좋은 공기에 지독한 악취가 스며든다고 생각하면 너무 끔찍하다. 더욱이 국립공원 내장산 들머리까지 그 냄새가 스멀거리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머리가 아프다. 그가 1인 시위를 멈출 수 없는 이유다.

전주/박임근 기자 pik00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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