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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5·18 당시 자위권 차원의 군 발포는 근거 없다”

등록 2017-10-11 11:37수정 2017-10-11 21:58

전남경찰청, 11일 5개월 동안 증언과 자료 조사해 5·18 보고서 발표
“군 발포 이전에 시민이 총기와 실탄을 탈취했다는 기존 주장은 조작됐다”
한겨레 자료사진
한겨레 자료사진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집단 발포가 시민군의 폭력에 맞선 자위권 차원에서 이뤄졌다는 신군부의 주장은 근거가 없는 것으로 경찰 조사 결과 확인됐다.

전남지방경찰청은 11일 5·18 직전 광주의 치안 상황과 계엄군의 과격 진압, 시위대의 무기 탈취 과정, 북한군 개입설 등에 대해 지난 4월27일부터 5달 동안 자체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5·18 민주화운동 관련 경찰사료 수집 및 활동조사팀’을 꾸린 경찰은 그동안 5·18 당시 현장 경찰관과 관련자 137명을 면담 조사했고 국가기록원과 5·18기록관 등지에서 군과 검찰, 광주시, 경찰 내부 기록 등을 조사했다. 특히 치안본부가 5·18 직후 작성했으나 지난 30년간 비공개로 설정돼 있던 경찰 감찰자료인 ‘전남사태 관계기록’을 최초로 검토했다.

조사팀은 이날 “5·18 직전 광주시내가 학생시위로 무질서해 군의 개입이 불가피했다거나 시위대의 총기탈취와 무장으로 인해 계엄군이 집단 발포를 했다는 군 기록은 가해자의 입장에서 상당 부분 왜곡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80년 당시 경찰 치안일지를 보면, 시민들이 최초로 경찰관서의 무기를 탈취한 시점은 5월21일 낮 계엄군의 도청 앞 집단 발포 이후인 이날 오후 1시30분 나주 남평지서에서 있었던 것으로 기록됐다. 그간 군 당국은 시민들이 21일 오전 8시 나주 반남, 오전 9시 나주 남평지서에서 무기를 탈취했기 때문에 이에 맞서 자위권을 발동해 발포했다고 주장해왔다. 경찰은 지난 4월 출간된 전두환 회고록 내용 중 “광주사태 초기 경찰력이 무력화되고 계엄군이 시위진압 전면에 나설 수밖에 없게 된 것은 전남경찰국장(안병하 치안감)의 중대한 과실 때문이었다”는 경찰 책임론이 제기되자 전남경찰청 차원에서 조사를 시작했다.

강성복 전남지방경찰청장은 “5·18 경찰 책임론에 대해 진상조사나 기록이 없는 경찰은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더 늦기 전에 생존 경찰관의 증언과 자료를 수집해 역사 왜곡을 바로잡고 진실 규명에 도움이 되도록 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시민 보호의 무한 책임이 있는 경찰이 5·18 당시 군의 과격 진압을 보다 적극적으로 제지하지 못한 점, 포고령 위반자 검거와 같은 신군부의 수습 활동 참여 과정에서 과잉 행위 등 경찰의 미흡한 조치에 대해서도 반성과 사과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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