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동구 봉무동에 있는 한국패션산업연구원. 김일우 기자
정부와 자치단체가 돈을 내 만든 한국패션산업연구원 직원이 기자에게 협박과 괴롭힘을 당했다는 내용의 글을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일 경찰, 연구원 노동조합, 유족 등의 말을 종합하면, 지난달 31일 낮 12시9분 대구 북구 산격동 한국패션센터 건물 지하 주차장 차 안에서 한국패션산업연구원의 책임행정원 손아무개(57)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차 안에는 번개탄을 피운 흔적이 남아 있었다. 손씨는 이날 새벽 2시2분 한 인터넷매체 김아무개 기자에게 ‘그동안 얼마나 당신 글로 인해서 많은 상처를 받았는지 생각해보았는지요…당신은 펜을 든 살인자요’라는 내용의 휴대전화 문자를 보냈다.
손씨의 업무용 컴퓨터에는 김 기자한테 협박과 괴롭힘을 당했다는 3장 짜리 글이 발견됐다. 글에는 ‘(김 기자가) 전화가 와서 12월 행사 좀 도와줄 수 없냐고 하기에 12월은 도저히 안된다고 하니…성을 내면서…박살낸다며 협박하고’ 등이 적혀 있었다. 손씨는 한국패션센터 건물 공간을 빌려주는 대관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손씨는 김 기자와 한국패션센터 건물 대관 문제를 놓고 갈등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31일 숨진 손아무개씨가 김아무개 기자에게 보낸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 유족·연구원 노조 제공
김 기자는 지난달 연구원에서 자료를 받아 한국패션센터 대관 비판 기사를 두차례 썼다. 김 기자는 기사에서 “손씨가 대관 업무를 하면서 특정업체의 편의를 봐주는 등 각종 횡포를 부리고 있다는 주장이 있다”고 했다. 경찰은 김 기자를 불러 조사할지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손씨 유족들과 연구원 노조는 이 사건과 관련해 기자와 대구시 공무원의 외압 의혹을 제기하며 장례식을 무기한 연기했다. 유족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은 3일 오전 11시 대구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 계획이다. 또 검찰에 김 기자를 고소·고발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김 기자는 “손씨와는 몇번 전화 통화 한 것이 전부고 본 적도 없으며 내가 협박을 하거나 괴롭혔다는 것은 사실 무근”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아는 업체의 민원이 있어 대관에 대해 알아보다가 문제점이 많아 기사를 두번 쓴 것이 전부”라고 설명했다.
김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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