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항일학생의거 77주년 기념식이 23일 부산 부산진구에 있는 어린이대공원 안 부산항일학생의거 기념탑에서 열렸다. 부산보훈청 제공
1940년 11월23일 부산 서구 서대신동 부산공설운동장(구덕운동장)에서 ‘제2회 경남 학도 전력증강 국방경기대회’가 열렸다. 일제의 전시체제 강화 목적의 하나로 부산·경남의 학생들이 참가하는 대회였다. 1회 대회에선 한국인 학교인 동래중학(현 동래고)이 우승했다. 2회 대회에선 전 대회 우승교인 동래중학이 가장 먼저 입장해야 했다. 하지만 일본인 학교가 첫머리에서 운동장에 입장했다.
일제는 대회에서도 한국인 학교에 불리한 편파 판정을 일삼았다. 동래중학은 마지막 장거리 행군에서 실격하더라도 2위 일본인 학교보다 총점에서 앞선 상태였다. 우승이 확실했다. 당일 오후 폐회식에서 부산병참기지사령관으로 대회심판장이었던 노다이 육군 대좌는 일본인 학교를 우승교로 발표했다.
동래중학과 부산2상(현 개성고)의 교사와 학생은 항의했다. 하지만 노다이는 “심판의 판정은 신성하고 절대 불가침이므로 따르라”고 강요했다. 대회에 참여했던 한국인 학생 1000여명은 분노해 운동장에서 부산 중구 보수동 쪽으로 <아리랑> 등을 부르며 행진했다. 학생들은 중구 영주동에 있는 노다이의 관사로 몰려가 돌을 던졌다.
이에 학생 200여명이 연행됐고, 15명이 구속, 70여명이 퇴학·정학 처분을 받았다. 이들 가운데 2명은 감옥에서 나온 뒤 고문 후유증으로 숨졌다. 이른바 ‘노다이 사건’으로 불리는 부산항일학생의거다.
부산항일학생의거 77주년 기념식이 23일 오전 부산진구 어린이대공원 안 부산항일학생의거 기념탑에서 열렸다. 이날은 부산시가 지난해 정한 ‘부산항일학생의 날’이다. 기념식에는 지역 애국지사와 유족, 시교육감, 동래고·개성고 재학생 등이 참석했다. 어린이대공원 학생교육문화회관에선 기념사진전이, 경성대 건학기념관에선 전국학술세미나가 열렸다. 김영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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