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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슬픈 민호의 18번째 ‘생일 촛불’

등록 2017-11-23 21:49수정 2017-11-23 22:16

제주시청 앞 촛불문화제
수능 끝낸 친구들 함께 참석
“쾌활한 아이였는데…안타까워”
중학교 교사 “세월호때와 같다”
‘현장실습 고등학생 사망에 따른 제주지역 공동대책위원회’가 23일 오후 제주시청 앞에서 현장실습 중 노동재해로 숨진 이민호군을 기리는 촛불문화제를 열고 있다. 제주/허호준 기자
‘현장실습 고등학생 사망에 따른 제주지역 공동대책위원회’가 23일 오후 제주시청 앞에서 현장실습 중 노동재해로 숨진 이민호군을 기리는 촛불문화제를 열고 있다. 제주/허호준 기자
“더 새디스트 버스데이.”(The Saddest Birthday·세상에서 가장 슬픈 생일)

전국 곳곳에 함박눈이 내린 23일 오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끝낸 수험생들이 그동안 고생한 마음의 부담을 덜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거리를 나섰지만, 한쪽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생일을 맞은 또래 청년이 있다.

제주 서귀포산업과학고 3학년 고 이민호군. 23일은 이군의 열여덟번째 생일이었다. 회사 쪽과 합의가 안 돼 이군은 장례식장에 그대로 있다. 이군의 부모는 아들의 생일이 더욱 서러워 울음을 삼켰다.

이날 오후 6시 제주시청 앞에서 이군을 기리기 위한 촛불문화제에서 만난 이군의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행사는 민주노총 제주본부 등 제주지역 24개 단체로 구성된 ‘현장실습 고등학생 사망에 따른 제주지역 공동대책위원회’가 마련한 것으로, 이군의 생일을 맞아 ‘더 새디스트 버스데이’라는 제목으로 진행됐다.

이군의 친구들이 23일 오후 제주시청 앞에서 열린 고 이민호군 추모 촛불문화제에 참석해 촛불을 들었다. 허호준 기자
이군의 친구들이 23일 오후 제주시청 앞에서 열린 고 이민호군 추모 촛불문화제에 참석해 촛불을 들었다. 허호준 기자
수능을 끝내고 참석한 이군의 친구 임재하(18·대기고3)군은 “중학교 때 친구다. 수능을 준비하다 나중에야 친구를 통해 민호가 사고 난 소식을 알게 됐다. 수능 준비한다고 병문안을 가지 못했는데 갑자기 세상을 떠나 지난 20일 조문했다. 친구들 분위기를 많이 띄워주고 밝고 쾌활한 아이였는데 갑자기 떠나 너무 안타깝다”며 고개를 숙였다. 친구인 현재윤(19·대기고3)군은 “안전관리대책이라도 철저히 했으면 이런 일이 없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박도겸(19)군은 서울에서 미술학원에 다니다 사고 소식을 듣자마자 다음날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로 내려와 병문안 갈 정도로 친한 친구다. 박군은 “민호가 첫 월급 탔다고 자랑하면서 세금을 빼고 월급액수가 적힌 명세서를 사진으로 찍어서 보여줬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옆에 있던 박군의 동생 도현(18·고2)군도 “민호형이 형과 가까워 친형처럼 지냈는데 이런 일을 당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군의 친구들은 “현장실습을 보내면 실습생은 학생도 아니고 직원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가 된다. 학교나 교육청도 더는 신경 쓰지 않는다. 2인1조 작업체제만 됐어도 사고가 나지 않았을 텐데 이런 현장실습 제도가 필요한지 모르겠다”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현장실습 고등학생 사망에 따른 제주지역 공동대책위원회’가 23일 오후 제주시청 앞에서 현장실습 중 노동재해로 숨진 이민호군을 기리는 촛불문화제를 열고 있다. 허호준 기자
‘현장실습 고등학생 사망에 따른 제주지역 공동대책위원회’가 23일 오후 제주시청 앞에서 현장실습 중 노동재해로 숨진 이민호군을 기리는 촛불문화제를 열고 있다. 허호준 기자
제주시청 앞에 마련된 고 이민호군 추모공간에는 이군의 명복을 빌거나 현장실습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가 하면 정부와 교육당국을 비판하는 글들이 이어지고 있다. 허호준 기자
제주시청 앞에 마련된 고 이민호군 추모공간에는 이군의 명복을 빌거나 현장실습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가 하면 정부와 교육당국을 비판하는 글들이 이어지고 있다. 허호준 기자
이날 촛불문화제에서 발언자로 나선 중학 교사 정영조 민주노총 제주본부 청소년노동인권사업단장은 “오늘 수능 감독을 하면서 이군의 또래 친구들을 보았다. 사고가 난 지 14일이 지나고 아이가 죽었는데 한 곳도 책임지겠다는 기관이나 어른이 없다. 세월호 때와 같다. 회사는 사과하지 않았고, 그동안 언론 브리핑 한 번 하지 않은 교육청과 사과문 하나 발표하지 못한 학교는 형편없는 교육기관으로 드러났다”고 비판했다.

촛불문화제에서 만난 현치훈(30·대학원생)씨는 “현재의 현장실습 제도는 학생을 위한 제도가 아니다. 학생의 인권이나 노동권은 안중에 없다. 교육청이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는 데 실망이 크다”고 말했다.

제주/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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