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김포-한겨레 한민족 디아스포라 포럼'이 열린 28일 오전 경기도 김포시 김포아트홀에서 김훈 작가가 '풍경의 안쪽' 제목으로 기조강연을 하고 있다. 김포/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물 위로 솟구치는 물고기들이 석양에 빛나고 새들은 수면 위로 급강하하는데 지나가는 배가 없고 고기 잡는 어부가 없다. 강은 흐르되 막혀 있다. 강화 쪽에서 퍼져오는 저녁노을이 물 위로 번지면, 먼 예성강과 임진강의 물줄기가 붉게 드러나고, 그날의 물때를 암기복창하는 초병들이 야간경계 초소에 배치된다. 해가 수평선에 내려앉고, 노을이 더 짙어지고, 남쪽과 북쪽의 산과 초소들이 같은 어둠 속에 묻히고, 적막강산에 물소리가 가득찬다.”
소설 <공터에서>와 에세이집 <풍경과 상처> 등을 펴낸 김훈(69) 작가는 28일 경기도 김포시 김포아트홀에서 열린 ‘제2회 김포-한겨레 한민족 디아스포라 포럼’ 기조강연에서 해질녘 한강하구 풍경을 이렇게 묘사했다. 그는 “빨간 노을에 함께 잠기면 어디가 남이고 어디가 북인지 알 수 없어 분단은 비현실적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풍경의 안쪽, 조강과 김포 들판’이란 제목의 이날 강연에서 그는 “이 세계의 모든 국경선은 인류의 이성과 정의가 지상에서 실현된 결과가 아니며, 수만 년에 걸친 전쟁과 약탈, 정복, 지배와 피지배의 종합적 결과물”이라며 “국가간의 정치군사적 힘의 관계 또한 그러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내 고향의 한강은 이 모순과 비극의 중심부를 흘러서, 하구에 이르러 거대한 적막을 펼친다. 김포반도 북단에서 적막은 청각과 시각에 가득찬다. 물과 갯벌과 잔산만으로 이루어지는 이 무인지경의 배후는 역사적이고, 정치군사적”이라고 말했다.
“큰 짐승을 잡아다 우리에 가두는 꼴로 맘대로 흐르지 못하는 한강이 오두산전망대를 지나 자연의 흐름에 내맡기는데 김포에 이르러 정치적 감옥에 들어간다”며 지리적 풍경과 정치군사적 모순된 풍경에 대해 설명했다.
김 작가는 특히 한강하구 내수면에서 최전방 포구이자 유일한 어촌계인 전류리에 대해 “소중하고 가슴아프고 상징적인 곳”이라고 애정을 나타냈다. 전류리는 경기 파주출판도시와 일산새도시 맞은 편에서 황복과 꽃게, 웅어, 숭어 등을 잡는 어촌이다. ‘바닷물이 거칠게 거꾸로 돈다’는 뜻의 이 마을을 달밤에 가보니 “수만마리 갈치떼가 서서 올라온 것처럼 보였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전류리 어민들은 민통선 안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분단의 턱 밑에서 생산을 위한 노동을 하는 사람들이다. 월선의 위험이 있다고 최근까지 동력선 허가를 안해줘 힘들게 노를 저어 고기를 잡았다.”
전류리 북쪽의 큰 포구였던 조강리 강변은 사람도 배도 없는 적막강산이다. 서해에서 서울 마포로 가는 배들이 밀물을 기다리며 머물던 정거장 같은 조강리는 포구가 없어진 자리에 기념비만 덩그러니 서있고 강변은 삼엄하게 철조망이 둘러져 있다. “조강리 맞은 편이 북쪽 개풍군 조강리인데 주민들이 나룻배를 타고 오가며 처녀총각이 결혼도 하고, 고기를 잡지 않은 겨울이면 남쪽 조강리 사람들이 개성 박연폭포를 보고 놀다가 돌아오기도 했던 이웃이었죠.” 한 마을이나 다름없던 남북 조강리 주민들은 서로 생사조차 알 지 못한 상태다.
그는 “한강하구의 모든 문제는 정전협정대로만 하면 해결된다”고 주장했다. “정전협정 5항대로만 하면 아무 문제가 없는데, 통행을 못한다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이의 제기를 하지 않은 채 70년 동안 아무 말도 못하고 살아왔어요.”
정전협정 1조 5항은 ‘한강하구의 수역으로 한쪽 강안이 일방의 통제 하에 있고 다른 한쪽 강안이 다른 일방의 통제 하에 있는 곳은 쌍방의 민간선박의 항해에 이를 개방한다. 쌍방 민간선박이 항행함에 있어 자기 측의 군사통제 하에 있는 육지에 배를 대는 것은 제한받지 않는다’고 돼있다. 이 규정대로라면 남북의 민간선박은 파주의 임진강 합류지점부터 김포, 강화도를 거쳐 불음도 인근까지 총 67㎞의 한강하구를 자유롭게 항행할 수 있다.
그는 “한강하구는 정전협정상 자유통행구역이며 비무장지대(DMZ)가 아니어서 유엔군사령부의 허가를 받아야 할 이유가 없다. 특별히 법을 새로 만들 필요도 없고 차려진 밥을 찾아 먹으면 된다”고 말했다.
“제아무리 신묘한 통일정책을 세우기 보다 젊은이들 마음과 생활속에 통일 열망을 심어주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전류리 포구의 의미와 조강나루가 인기척이 없는 이유를 아는 것이 통일의 지름길이죠. 한강하구에 배를 다니게 하자, 조강리에서 고기를 잡게 해달라고 계속 말해야 합니다.”
김포/박경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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