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발짝 달릴 때마다 1원씩 적립하는 마라톤맨 전두환씨.전두환씨 제공
‘착한 전두환’도 있다. 충북 옥천의 마라톤맨 전두환(48·사진)씨다.
전 씨는 6일 옥천군청을 찾아 불우이웃돕기에 써 달라며 200만원을 내놨다. 이 성금엔 그의 마라톤 여정이 배어 있다.
그는 2010년 12월 마라톤에 입문했다. “평소에도 운동을 좋아했어요. 헬스장에서 러닝머신만 달리다가 우연히 대구 금호강 마라톤 하프 코스에 도전했는데 완주한 뒤 마라톤 매력에 빠졌죠.”
한발짝 달릴 때마다 1원씩 200만원을 적립한 옥천 마라톤맨 전두환씨(왼쪽)가 6일 김영만 옥천군수에게 성금을 건네고 있다.옥천군청 제공
고독한 러너가 된 그는 혼자 달리는 게 마뜩잖았다. “실내에서 달릴 때보다 시원하고 좋았지만 왠지 달리는 게 심심하더군요. 그래서 한 발짝(1m) 달릴 때마다 1원씩 적립하기로 했죠. 남들은 ‘서브 3’(풀 코스 3시간 이내 완주)를 꿈꾸지만 저는 다치지 않고 4~5시간 안에 완주해 적립하는 게 목표지요.”
그는 지금까지 마라톤 풀 코스(42.195㎞) 35차례, 하프 코스(21㎞) 13차례, 31㎞ 코스 2차례, 울트라(100㎞) 3차례 완주하는 등 215만미터를 뛰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다치지 않았고, 200여만원을 적립해 목표를 이뤘다.
그는 대회마다 화제를 모은다. 해마다 7~8차례 주요 대회에 참가하는 유명 마라토너이기도 하지만 그의 가슴에 박힌 이름 ‘전·두·환’ 때문이다. 그는 한자까지 전두환 전 대통령과 똑같다. “거리에서 응원하던 이도, 앞뒤에서 달리던 이도 ‘각하’, ‘충성’ 등의 구호를 붙이며 응원을 해 줍니다. 처음에 쑥스럽더니 이젠 힘이 되네요.”
옥천 서울정형외과 사무장으로 일하는 그는 이름 때문에 일터에선 곤란을 겪기도 한다. “누군가 전화를 걸어와 ‘예 전두환입니다’라고 하면, ‘난 노태우다’라고 말하며 장난하지 말라고 하기도 해요. 전두환 전 대통령과 비슷한 성향을 지닌 것으로 오해하는 이도 있지만 그다지 그분을 존경하지 않아요. 한때 이름이 탐탁지 않기도 했지만 그냥 운명으로 여기로 살죠.”
이제 그의 아들 지원(19) 씨도 뛴다. 대전 ㄷ대 군사학과 1학년인 지원 씨는 중학교 때부터 그를 따라 뛰더니 최근엔 대회도 따라나선다. “아들도 뛸 때마다 조금씩 적립을 하게 할 참이에요. 요즘은 함께 뛰니 힘이 나네요.”
지난해 2월 일본 도쿄마라톤에 출전한 전두환씨. 전두환씨 제공
그는 꿈이 있다. 5년 뒤 다시 200만원을 적립해 성금을 내고, 세계 6대 메이저 마라톤 대회에도 출전하고 싶다. 그는 지난해 2월 일본 도쿄 마라톤에 출전했다. 2019년 9월 베를린 마라톤에 출전이 1차 목표다.
“35~38㎞ 지점 숨이 턱까지 차올라 죽을 듯할 땐 다음엔 절대 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가 골인하면 이내 다음 대회를 생각하게 하는 게 마라톤의 매력이죠. 참 힘들지만 성취감이 대단하거든요. 게다가 조금씩 적립해 남을 도울 수 있으니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뛰어야죠.”
그는 내년 1월1일 오전 11시11분11초 대전 갑천 맨몸 마라톤 출발선에서 다시 2000㎞ 대장정을 시작한다. 오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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