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실에 ‘키다리 아저씨’가 주고 간 자기앞수표 1억2000만원이 놓여 있다.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세밑이 되면 전국 곳곳에는 ‘얼굴없는 천사’와 ‘키다리 아저씨’가 나타난다.
28일 오전 11시26분께 전주시 노송동주민센터에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40~50대 목소리의 한 남성이 “동사무소 뒤로 가면 돼지저금통이 놓여있다”는 말만 남긴 채 전화를 끊었다. 직원들은 그 곳으로 가보니 돼지저금통과 현금 뭉치가 들어 있는 종이상자 하나가 놓여있었다. 상자 안에는 5만원 지폐 다발과 동전이 들어있는 돼지저금통이 있었다. 세어 보니, 6027만9210원이다. 상자 속에 든 종이에는 ‘소년소녀가장 여러분 힘든 한해 보내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내년에는 더 좋아질 거라 생각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적혀 있었다. 이 남성은 전북에서 ‘얼굴없는 천사’로 불린다. 올해까지 18년째 19차례 그가 놓고 간 금액은 5억5813만8710원이다. 전주시는 이 얼굴없는 천사의 숨은 뜻을 기리려고 2009년 12월 노송동주민센터 화단에 ‘얼굴없는 천사의 비’를 세웠다. 노송동 일대 주민들은 해마다 이어지는 얼굴없는 천사의 선행을 본받자는 뜻에서 숫자 천사(1004)에서 따온 10월4일을 ‘천사의 날’로 정해 불우이웃을 돕고 있다. 날씨가 추워지면 대구에는 ‘키다리 아저씨’가 나타난다.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1억원이 넘는 돈을 건네면서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써달라”고 말한다. 지난 23일에도 1억2000만원이 든 봉투를 주고 갔다. 그는 “어린 시절 가정형편이 몹시 어려워서 하고 싶던 공부를 하지 못해 포기한 그때를 생각하며 사람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겼다.
그는 2012년부터 매년 겨울 나타나 1억원이 넘는 돈을 주고 간다. 그가 지금까지 기부한 돈은 8억4000만원이 넘는다. 대구사회복지모금회에 개인적으로 기부한 사람 중에서는 가장 많은 돈이다. 하지만 그의 이름은 아무도 모른다. 처자식을 둔 60대 남성이며 대구에서 조그마한 회사를 운영한다는 것 밖에는 알려진 것이 없다.
대전에는 ‘산타클로스’가 나타났다. 지난 14일 대전 동구 판암1동주민센터 앞에 쌀 500㎏을 실은 1t 트럭이 도착했다. 충남에 사는 농사꾼이라고만 자신을 소개한 한 남성은 쌀을 내려놓고 황급히 떠났다. 직원들이 이름을 물었지만 그는 “홀로 사는 어르신이나 생활 형편이 어려운 분들에게 나눠달라”는 말만 남겼다. 그는 매년 겨울 이렇게 판암동을 찾아 쌀을 놓고 간다고 한다. 사람들은 그를 ‘판암1동 산타클로스’라 부른다.
경기도 파주 파팡면사무소에도 6년째 쌀을 기부하는 사람이 있다. 지난 19일에도 20㎏ 짜리 햅쌀 125포대가 면사무소에 배달됐다. 쌀 포대에는 ‘’추운 겨울 불우한 이웃과 함께 하고 싶은 마음에 작은 마음을 전합니다’라는 쪽지글이 붙어있었다.
김일우 박임근 최예린 박경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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