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근 전주덕진경찰서 수사과장이 29일 오전 전북지방경찰청 기자실에서 실종 여아 고준희양이 숨진 채로 발견된 내용 등을 브리핑하고 있다. 박임근 기자
전북 전주에서 실종된 고준희(5)양이 29일 새벽 숨진 채 발견됐다. 준희양 친아버지 고아무개(36)씨는 군산의 한 야산에 딸 주검을 유기했다고 경찰에서 자백했다. 준희양은 8개월 전에 이미 숨진 뒤 암매장된 것으로 드러났다.
■ 암매장과 실종, 자백 전북지방경찰청은 28일 친아버지 고씨가 숨진 딸을 군산의 야산에 버렸다는 자백을 받아냈다. 29일 새벽 4시45분께 30㎝ 깊이 구덩이에 파묻힌 보자기에 싸인 주검을 찾았다. 이날 경찰은 준희양을 암매장한 고씨와 고씨 내연녀의 어머니 김아무개(61)씨를 사체유기 혐의로 긴급체포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도 의뢰했다. 경찰은 고씨와 김씨가 군산에 함께 다녀오고 같은 지역에서 휴대전화가 동시에 꺼진 점 등을 수상히 여겨 추궁한 끝에 고씨의 자백을 받아냈다.
고씨는 경찰조사에서 4월26일 오후 전주시 인후동 김씨 집을 찾아 “내일 준희가 병원에 가야 한다”고 말하고 아이를 맡겼다. 김씨는 준희양에게 저녁밥을 먹이고 재웠다고 했다. 그날 야간근무를 마친 고씨가 준희양 옷을 가져다주려고 다음날 새벽 1시께 김씨 집을 다시 찾았다. 고씨는 “딸을 살펴보니 입에서 토한 음식물이 흘러 있었다. 기도가 막혀 약 2시간 전인 26일 밤 11시께 숨졌을 것”이라고 했다. 고씨는 딸을 곧바로 김씨 차 트렁크에 싣고 선산이 있는 군산시 내초동 야산으로 가서 매장했다.
고씨는 경찰조사에서 딸이 숨진 사실이 이혼소송 중인 준희양 친어머니와의 양육비 문제에 영향을 미칠까봐 딸 주검을 유기하기로 김씨와 공모했다고 했다.
실종된 고준희(5)양을 야산에 유기한 친부 고모(36·가운데)씨가 29일 새벽 전주 덕진경찰서로 압송되고 있다. 연합뉴스
■ ‘8개월’ 허위 알리바이 경찰은 준희양이 숨진 뒤 실종신고까지 8개월 동안 가족이 신고하지 않은 사실을 주목하고 있다. 고씨와 김씨는 암매장 사실을 숨기려고 치밀하게 알리바이(현장부재증명)를 꾸민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김영근 전주덕진경찰서 수사과장은 “장난감을 집 안에 진열해 준희양이 살아있는 것처럼 꾸몄다. 이웃에게 아이를 키우고 있다고 종종 얘기했다. 심지어 준희양 생일인 7월22일에는 미역국을 끓여 (준희양이 없는 상태로) 이웃과 함께 먹기도 했다”고 말했다. 고씨와 김씨는 4월부터 11월까지 매달 60만~70만원을 은행계좌로 주고받았다. 양육비를 보낸 것처럼 금융 자료를 남기기 위해서였다.
이들의 자작극은 아이 생필품을 최근에 구매한 기록이 없고, 준희양 칫솔에서 유전자가 검출되지 않은 점 등을 수상하게 여긴 경찰 수사에 덜미가 잡혔다. 경찰은 “친아버지 고씨가 김씨에게 매달 계좌로 양육비를 보내는 등 준희양을 실제 키우는 것처럼 알리바이를 만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 남은 수사 경찰은 “고씨와 김씨가 살해를 했다고 단정 지을 증거는 아직까지 없다”고 밝혔다. 고씨와 김씨는 준희양 사망과 암매장에 고씨 내연녀 이아무개씨가 관여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경찰은 준희양 사망 경위와 이들 사이의 공모 관계를 추가 조사하고 있다. 이씨는 지난 8일 허위 실종신고를 했기에 공무집행방해 혐의가 적용된다. 김영근 수사과장은 “준희양 시신 유기 사건은 학대치사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전주/박임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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