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희생자 추념일을 ‘지방 공휴일’로 지정할 수 있을까. 제주지역에서 4·3 희생자 추념일을 ‘지방 공휴일’로 지정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으나 관련 법령이 없어 정부도 고심하고 있다.
제주도는 10일 인사혁신처가 지난달 제주도의회에서 의결한 ‘제주도 4·3희생자 추념일의 지방 공휴일 지정에 관한 조례’에 대해 재의를 요구하는 공문을 지난 8일 제주도에 보내왔다고 밝혔다. 인사혁신처는 지방 공휴일로 지정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도는 정부의 요구에 따라 이날 제주도의회에 재의를 요구했다.
앞서 제주도의회는 지난달 “매년 4월3일 제주4·3희생자 추념일을 지방 공휴일로 지정해 도민 화합과 통합, 평화와 인권, 화해·상생의 4·3정신을 고양·전승하자”는 취지로 조례를 만들었다. 당시 제주도는 이 조례안에 대해 “도민 화합을 꾀하고 4·3희생자와 유족의 아픔을 같이한다는 뜻에서 조례 제정에 동의한다”고 밝혔으나, “지방 공휴일을 조례로 제정할 수 있다는 위임 법령이 없어 중앙정부의 법령해석 여부에 따라 재의 요구 또는 무효 확인의 소 제기가 요구될 수도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전국에서 지방자치단체가 조례로 지방 공휴일을 지정한 사례는 없다. 인사혁신처는 제주4·3이 제주지역에서 갖는 역사적 의미와 상징성 등을 고려할 때 조례 제정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관련 법령이 없어서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정지만 인사혁신처 복무과장은 “조례 제정 취지는 충분히 공감하지만, 법률 자문과 관계관 협의 결과 현행 법령상 근거가 명확하지 않고, 위임 근거가 없어 법령 위배소지가 있다는 결과를 도출했다. 또 제주도에서 지방 공휴일을 제정하면 다른 지방자치단체도 유사 기념일에 대해 조례로 공휴일을 제정할 가능성이 충분히 예상된다. 법령 관계를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지방 공휴일 지정에 대해 재의를 요구했다”고 말했다. 인사혁신처가 4·3 지방 공휴일 지정을 ‘충분히 공감’하지만 ‘불가피하게’ 재의를 요구할 수밖에 없다고 밝힌 데서 정부의 고민이 읽힌다.
도의회가 4·3 지방 공휴일 조례를 재의결하면 정부와 지방의회 간 소송으로 번질 수 있다. 제주도 관계자는 “다음 달 열리는 도의회 임시회에서 관련 조례를 재의결할 것으로 보인다. 제주도가 관련 조례에 대해 이미 동의를 했기 때문에 원안 그대로 재의결하면 인사혁신처가 대법원에 제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허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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