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순사건 당시 수많은 민간인이 군경의 토벌 작전 과정에서 억울한 피해를 보았다. 여수지역사회연구소 제공
여순사건 발발 70돌을 맞았지만 주민과 유족의 상처를 치유할 예산이 한푼도 세워지지 않았다.
여순사건 유족회는 11일 “문재인 정부가 과거사 문제 해결에 의지를 보이는데도 여수시가 70돌을 맞은 여순사건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유족회는 “올해 제주 4·3사건을 기념하는 데 국비 46억원과 지방비 129억원을 합쳐 175억원이 들어간다. 4·3과 역사적 맥락이 닿아있고, 민간인 피해도 버금가는 여순사건 예산은 한푼도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하소연했다.
앞서 여순사건 70주년 기념사업추진위는 지난해 말 “학살현장 답사, 역사지도 제작, 수업교재 발간, 유적표시판 정비 등 25개 사업을 추진하겠다”며 6억9400만원을 여수시에 요청했다. 시는 “당시 숨진 경찰 40~60명의 후손과 경우회 향군회 등 보수단체가 반발한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에 따라 사건 50돌인 98년 시작했던 학술토론회의 명맥이 끊기고, 유족의 바람이었던 위령탑 건립과 기념공원 조성 등도 성사되기 어려워졌다.
황순경(81) 여수유족회장은 “황당하고 안타깝다. 이달 말 주철현 여수시장을 찾아가 추경예산에라도 꼭 반영해 달라고 요청하겠다. 주 시장이 유족의 눈물을 닦아주는 데 앞장서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여수시민단체들은 선거를 앞둔 주 시장의 양다리 걸치기와 시의회의 몰역사적인 태도 탓에 예산 확보가 꼬인 것으로 분석했다. 주 시장은 2016년 두 차례 시 주관으로 합동 위령제를 지냈을 뿐 지역의 아픈 역사를 보듬기 위한 자체 계획을 세우는 데 무관심했다. 국민의당이 다수당인 여수시의회도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지원에 관한 조례’의 제정을 3년째 미뤄 눈총을 사고 있다.
여순사건은 1948년 10월19일 여수 주둔 14연대 일부 군인들이 제주 4·3사건 토벌을 위한 출병을 거부한 뒤 교전이 발생해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무고한 민간인 1만여명이 숨진 아픈 역사였다.
안관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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