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대전 ㅇ동물원의 반달가슴곰 ‘까불이’는 사람이 다가가자 유리벽을 마구 할퀴고 있었다. 최예린 기자
반달가슴곰 ‘까불이’는 3평 남짓 방의 유리벽을 마구 할퀴었다. 까불이는 대전 ㅇ동물원에 산다. 1층 수족관과 2·3층 실내체험 동물원으로 꾸며진 대전 ㅇ동물원에는 까불이뿐만 아니라 호랑이, 사자, 재규어, 스라소니, 하이에나 등이 사는 맹수관이 있다. 맹수들은 암수 2마리씩 약 3~5평(작은방), 8~14평(큰방)의 유리방에 갇혀 관람객을 맞는다.
요즘처럼 추운 날씨에는 ㅇ동물원 같은 실내체험 동물원이 인기다. 관람객들이 계절에 상관없이 짧은 시간에 많은 동물을 한꺼번에 편하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구경하는’ 사람에게 좋은 실내체험 동물원이 ‘구경당하는’ 동물에게도 좋은 것일까? 지난해 8월, 9월, 12월 3차례 ㅇ동물원을 찾았다.
지난해 9월25일 까불이는 불도 켜져 있지 않은 작은방에 짝곰과 함께 있었다. 전달인 8월13일 낮에도 까불이는 작은방에 혼자 갇혀 있었다. ㅇ동물원 맹수들이 사는 곳의 바닥은 시멘트, 전면 벽은 통유리로 돼 있다. 실외에서 동물들이 지내는 곳은 없다. 동물이 쉬는 곳과 관람당하는 곳의 구분이 없다.
구경하는 사람이 오면 까불이는 유리벽 밑에 난 먹이구멍에 달라붙어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유리벽을 발톱과 이빨로 할퀴고 좁은 공간을 정신없이 왔다 갔다 했다. ㅇ동물원을 찾은 3차례 모두 까불이와 짝곰은 이런 식의 정형행동(동물의 목적 없는 반복행동으로 스트레스가 극심함을 보여줌)을 보였다. 작은방 옆에 큰방이 있지만 이곳의 맹수들은 사육사가 청소를 시작하는 오후 늦게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작은방에서 생활한다.
지난 8월 대전 ㅇ동물원의 반달곰 모습. 3평가량 작은방에 갇혀 유리벽 사이를 쉴 새 없이 왔다 갔다 하는 정형행동을 보였다. 최예린 기자
반달곰보다 덩치 큰 호랑이와 사자도 마찬가지다. 호랑이(2마리)는 약 4평, 사자 1마리는 약 4.5평, 스라소니·블랙재규어(각 2마리)는 2.7평 유리방에서 잠을 잔다. 사자는 사육사가 준 닭고기를 외면한 채 축 늘어져 있었고, 호랑이는 유리벽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정형행동을 보였다. 낮 시간 13평 정도의 큰방 쪽에 있을 때도 호랑이는 동물사를 가로질러 쉴 새 없이 왔다 갔다 했다.
맹수사마다 유리벽 아래 쇠파이프를 박아놓은 먹이구멍을 만들어놓았다. 관람객은 날카로운 쇠꼬챙이에 꽂힌 닭다리 등의 먹이를 동물원에서 구입해 먹이구멍 안으로 밀어넣는다. 구멍 크기가 어린이 주먹이 다 들어갈 정도로 넓었다. 주로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쇠꼬챙이 먹이를 사준 뒤 먹이구멍에 밀어넣게 한다. 맹수관의 상당수 동물은 사람이 다가가면 먹이구멍 쪽에 달라붙어 입와 이빨로 구멍을 할퀴고 먹이를 주지 않으면 유리벽 앞에서 빠르게 왔다 갔다 하는 정형행동을 했다.
ㅇ동물원의 사육사들은 평일 오후 5∼6시면 퇴근한다. 9월25일 저녁 6시40분께 맹수사 안의 불빛이 일제히 꺼졌다. 형광등이 꺼지자 동물사 안은 암흑으로 변했다. 관람 마감 시간(평일 저녁 7시, 주말 저녁 8시)까지만 사육사 등 직원이 1명씩 남아 당직을 서고 그 이후 아침까지 동물을 돌보는 사람은 없다. 동물원에 상주하는 수의사도 없다.
지난해 9월25일 대전 ㅇ동물원의 호랑이 모습. 호랑이 암수 2마리가 4평가량의 전면 통유리 사육사 안에 앉아 있다. 최예린 기자
지난해 9월25일 ㅇ동물원의 사자 모습. 밝은 형광등 밑 4.5평가량의 동물사에 갇혀 힘없이 늘어진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최예린 기자
지난해 9월25일 ㅇ동물원의 블랙재규어 모습. 2.7평 유리방 안을 계속 왔다 갔다 하는 정형행동을 보였다. 최예린 기자
지난해 9월25일 ㅇ동물원 스라소니 모습. 암수 스라소니 2마리도 매일 오후 늦게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약 2.7평의 작은방에서 지낸다. 최예린 기자
까불이는 생후 11개월 때인 2016년 11월 이 동물원을 탈출했다. 탈출은 동물원에 사람이 아무도 없는 새벽 시간 지붕 밑 쇠창살을 통해 이뤄진 것으로 추정된다. 까불이는 동물원에서 300m 떨어진 대전 보문산 등산로에서 발견돼 붙잡혔다. 그 일이 있고 나서 까불이는 성격이 달라졌다. ㅇ동물원의 한 사육사는 “탈출 사건이 있기 전까지 까불이는 순한 편이었다. 포획될 때 마음에 상처가 남았는지 지금은 사람만 보면 유리벽을 심하게 할퀴면서 사나운 행동을 한다. 그때도 지금도 관람시간이 끝난 뒤 다음날 아침까지 실내체험 동물원에는 당직자가 없다. 시시티브이(CCTV)만 돌아간다. 외주 수의사가 있긴 한데 동물에게 특별한 이상이 있을 때 와서 진료하는 정도”라고 말했다.
지난해 9월13일 찾은 경기 평택 ㅈ동물원의 암사자 ‘레미’도 3평가량의 실내 공간에 산다. 올해로 17살인 레미는 국내 다른 동물원에서 태어나 ㅈ동물원으로 옮겨졌다. 레미의 방 한쪽 면은 ㅇ동물원 맹수관처럼 통유리로 돼 있다. 다른 한쪽 벽은 먹이 주는 방과 연결됐고 나머지는 시멘트벽이다. 바닥에는 욕실에 쓰는 타일이 깔려 있고 가로 1.5m, 세로 2m의 나무침대 하나만 놓여 있었다. 벽 쪽에 작은 철창이 나 있다.
동물원 입구 쪽에 있는 실외 동물사에는 일본원숭이, 조랑말, 돼지, 대형견, 기니피그 등이 전시돼 있는데 조랑말 동물사에는 뙤약볕을 피할 만한 그늘막이 부족했다. 1·2층으로 나뉜 실내 공간에는 레미 말고도 스컹크, 코아티, 미어캣(남아프리카에 사는 몸길이 20㎝ 정도의 몽구스과 포유류) 등이 있었다. 코아티는 80㎝ 남짓의 철창 사육사에 갇혀 쉴 새 없이 왔다 갔다 하며 정형행동을 보였다. 코아티는 너구리과 동물로 남미에 많이 산다.
지난해 9월13일 경기 평택 ㅈ동물원의 16살 암사자가 우리에 앉아 있다. 신소윤 기자
까불이나 레미 같은 맹수를 전시하는 실내체험 동물원은 대전, 평택, 경남 김해, 대구 등에 있다. 특히 최근 코아티, 라쿤, 토끼, 미어캣처럼 비교적 몸집이 작은 동물을 데려다놓고 관람객이 직접 만지고 먹이를 줄 수 있게 하는 실내체험 동물원이 전국에 우후죽순 생기고 있다. 실내라 계절에 상관없이 둘러볼 수 있고, 좁은 공간에 많은 동물을 전시해 짧은 시간 안에 여러 동물을 볼 수 있어 관람객이 좋아하기 때문이다. 운영자 쪽에서는 번식력이 좋은 멸종위기종이 아닌 동물을 싸게 데려와 실내에 두면 적은 투자 비용으로도 쉽게 돈을 벌 수 있다. 현행법상 면적 말고는 동물사 조건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이 없어 실내체험 동물원의 설립·운영은 까다롭지 않다. 전문가들은 면적 규정도 동물이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기준에 한참 못 미친다고 본다.
전문동물보호단체 ‘동물을 위한 행동’이 지난해 2월 발표한 ‘실내 동물원 조사 보고서’를 보면, 좁은 사육 면적은 동물들이 받는 만성적 스트레스의 주요 원인이다. 관람객의 먹이주기도 굶기, 폭식, 구토 등 동물의 식이장애를 유발하고 스트레스를 높인다. 특히 사자, 호랑이, 블랙재규어, 스라소니, 하이에나, 반달가슴곰 등 대형 포유류에게는 햇빛을 쬘 수 있는 별도의 실외 사육사가 필요하지만, 그런 실외 공간을 갖춘 실내체험 동물원은 없다. 관람시간에는 형광등 불빛 아래 있다가 관람시간이 끝나면 조명이 꺼지면서 갑자기 암흑으로 변하는 상황도 동물에게 공포감을 준다. 전면 통유리와 몸을 숨길 곳이 없는 곳에서 사는 동물은 관람객 시선에 고스란히 노출돼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전채은 ‘동물을 위한 행동’ 대표는 “다른 동물에게도 넓은 사육사는 꼭 필요하지만 특히 곰·고양이과의 몸집이 큰 야생동물들은 꽤 넓은 공간에서 자연광을 쐬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이런 동물을 두려면 자연광을 쐴 수 있는 실외 전시관과 밤에 쉴 수 있는 실내 공간을 반드시 함께 둬야 한다. 그러나 국내에는 면적 말고는 야생동물의 사육환경을 구체적으로 정한 규정이 없다. 대형 포유류부터 작은 동물에 이르기까지 종별로 동물원의 사육환경을 훨씬 더 구체적으로 정해놓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내체험 동물원의 동물 관리에 대해서도 전 대표는 “동물원이든 보호소든 동물들이 사는 곳에 사육사·수의사 등 전문 상주인력이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야생동물은 애완동물과 달리 표정으로 건강상태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수의사가 건강상태를 꾸준히 검진해 기록해둬야 한다. 사육환경이 열악하고 동물 관리가 엉망이라고 소문난 실내체험 동물원은 외부 동물병원의 수의사와 촉탁 계약을 맺기도 어렵다. 실내체험 동물원에도 상주 수의사를 두도록 규정을 빨리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대전 평택/글·사진 최예린 신소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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