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광역시 북구 신용동 제일풍경채 아파트 주민들은 경로당을 아이돌봄센터로 활용하고 있다. 경로당을 찾은 아이들이 할머니들과 놀이를 하고 있다. 입주자대표회 제공
“아이를 잠시라도 돌봐줄 사람이 없어 링거도 맞지 못해 많이 울었어요.”
광주광역시 북구 신용동 제일풍경채 아파트에 사는 주부 윤정은(38)씨는 16일 “두 자녀를 키우면서 내 몸이 아플 때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지난 해 봄 몸이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한 적이 있었다. 그는 “전업주부인 동네 엄마들도 비슷한 경험을 했더라”고 말했다. 아파트 단지 613가구 중 70% 정도를 차지하는 맞벌이 부부의 육아 고충도 마찬가지다. 그는 “직장맘들이 야근이라도 하는 날엔 친정엄마의 도움을 받지 못할 경우 부부싸움이 난다”며 “육아의 어려움을 마을에서 함께 푸는 방법이 없을까를 고민하게 됐다”고 말했다.
육아의 ‘사각시간’은 오후 6시부터 저녁 8시다. 동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도 오후 6시 이전에 아이를 데겨가길 바란다. 직장맘들이 오후 6시에 퇴근하지만 집에 도착하는 귀가시간까지가 ‘공백’이 있다. 입주자대표회가 먼저 “동네 어르신들이 실버클럽(경로당의 별칭)에서 아이들을 돌봐주시면 좋을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경로당 어르신들이 “동네 아이들이 우리 손자들이지, 뭐…”하며 흔쾌히 화답했다.
광주시 북구 신용동 제일풍경채 아파트 주민들이 경로당 아이돌봄센터에 대해 사회적 관계망 서비스를 통해 대화하고 있다.
아파트 입주자회는 광주 북구에서 여성친화마을 조성사업으로 500만원을 지원받았다. 경로당(109㎡)에서 돌보미 사업이 시작된 것은 지난 해 9월부터다. 돌보미 어르신 5명의 인건비는 사업비에서 해결했다. 자원봉사자들이 보드게임 놀이를 함께 하고, 책도 읽어주었다. 3개월 사업 동안 하루 평균 10명 정도의 아이들이 찾았다. 송혜은(70) 할머니는 “아이들과 함께 노는 것이 재미있다. 친손녀처럼 생각해 정성껏 돌보고 있다”고 말했다. 유상식(46) 입주자 대표회 회장은 “아이들 덕분에 동네 어르신들과 대화할 일이 많아졌다. 아이들을 통해 동네 안 3세대가 융합하는 효과를 봤다”고 말했다.
광주시 북구 신용동 제일풍경채 아파트 경로당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다.입주자대표회 제공
남구 사직동 경로당에서도 지난 해 1천만원의 사업비를 지원받아 아이 돌봄 서비스를 제공했다. 어르신들이 일하는 엄마들을 기다리는 아이들을 돌보며 책도 읽어주고 간식도 챙겨준다. 이 경로당엔 국제결혼이주여성들이 시간제로 일을 하려고 자녀들을 맡기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광산구 비아동 까망이도서관에서도 지난 해 어르신 2명이 직장맘이나 한부모 가정을 위해 야간 아이 돌보미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광주시와 5개구는 지난해 경로당·작은도서관 등 15곳에서 아이돌봄 서비스를 진행했다. 여성가족부의 여성가족친화마을 사업의 하나로 2014년부터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지원금의 한계 때문에 석달동안만 운영되는 게 아쉽다. 이미영 광주여성재단 연구원은 “아동돌봄의 공백과 사각지대를 없애려면 정부 서비스 외에 마을 안에서 아동돌봄공동체를 구축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대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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