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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보자 ‘선거 밑천’ 되는 출판기념회…누군가에겐 “현금 고지서”

등록 2018-03-09 05:01수정 2018-03-09 09:20

출판기념회, 합법적 후원금 받는 유일한 수단
단독입수한 책구입명단 확인해 보니…100만원 이상 고액도
초대장에 “현금납부 고지서 받는 기분” 고충
2014년 지방선거에서 경기도의 한 기초단체장 선거에 출마한 예비후보자의 ‘출판기념회 책 구매명단’
2014년 지방선거에서 경기도의 한 기초단체장 선거에 출마한 예비후보자의 ‘출판기념회 책 구매명단’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후보들의 출판기념회가 봇물 터지듯 열리는 가운데 출판기념회를 통해 얼마의 수익을 올릴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후보들이 합법적으로 선거 밑천을 마련하는 수단인 출판기념회는 수입 내용을 공개할 의무도 없다. 책 구매 정가는 있어도 얼마를 했는지 드러나지 않아 ‘깜깜이’이기 때문이다. 후보들에겐 두둑한 ‘선거 밑천'을 마련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지만, 마지 못해 눈도장을 찍어야 하거나 일종의 ‘보험’을 들어야 하는 이들에겐 괴로움이다.

8일 <한겨레>가 2014년 지방선거에서 경기도의 한 기초단체장 선거에 출마한 예비후보자 ‘출판기념회 책 구매명단’을 입수한 결과를 보면, 책 정가는 1만5000원에 그쳤지만 책값을 낸 82명 가운데 67명이 최하 5만~10만원을 냈다. 100만원을 낸 사람도 5명에 이르렀다.

에이포(A4) 용지 2장짜리 이 명단에는 책을 구매한 82명의 이름과 직업, 이들이 낸 책값이 명시돼 있었다. 유명 프렌차이즈 그룹 임원과 대형 교회 목사, 유명 호텔 임원 등이 고액 구매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12명은 20만~30만원에 구매했다. 82명이 낸 책값은 1334만원으로 집계됐다.

당시 이 출판기념회에는 400여명이 다녀간 것으로 알려졌다. 출판기념회를 연 경험이 있는 이 지역의 한 정치인은 “이 예비후보는 상대적으로 공천 가능성이 희박하고, 지지세도 떨어져 책 판매대금이 많지 않은 편”이라며 “현직 단체장이나 당선 가능성이 큰 후보에겐 수천명이 몰려 출판기념회로 선거비용을 마련하는데 수월하다”고 귀띔했다.

정치인 출판기념회에서 정가보다 수십~수백배 많은 고액 책값을 내도 공직선거법이나 정치자금법은 물론 부정청탁금지법에도 저촉되지 않는다. 책값 명목의 축하금품은 기부 행위로 간주하지 않고, 도서구매비 기준 자체도 없기 때문이다. 다만 도서 무료 제공은 기부 행위에 해당한다. 출판기념회는 결국 후보자들이 일종의 후원금을 합법적으로 거둘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셈이다.

지난 1월27일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 2전시장에서 열린 김유임 경기도 의원의 책 ‘새로운 고양, 한다면 한다’ 출판기념회에 지지자들이 참석해 축하하고 있다. 기사 내용과 상관없음. 김유임 경기도의원 제공
지난 1월27일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 2전시장에서 열린 김유임 경기도 의원의 책 ‘새로운 고양, 한다면 한다’ 출판기념회에 지지자들이 참석해 축하하고 있다. 기사 내용과 상관없음. 김유임 경기도의원 제공
여·야 후보들이 앞다퉈 출판기념회를 열면서 지역사회 곳곳에서 볼멘소리가 터져 나온다. 좁은 지역사회에서 한 다리만 걸치면 알음알음한 관계인데, 외면하기도 어렵고 출판기념회에 가는 것이 마치 줄은 댄 것처럼 비칠까 부담이라는 것이다. 인천시의 한 공무원은 “민선5기 때 정무부시장을 지낸 김교흥 전 국회 사무총장 출판기념회(지난 6일 개최)에 가야 할 지 고심했다. 9일 유정복 현 시장도 출판기념회를 여는데 눈치를 안 볼 수 없지 않겠냐”고 고민했다.

경기도 고양시 일부 공무원들은 최성 시장이 못마땅한 눈치다. 최 시장은 재임 8년 동안 책 6권을 내고, 무려 출판기념회를 4번 열었다. 각종 행정권한과 인사권을 쥔 현직 시장의 출판기념회에는 공무원과 산하단체, 지역 중소상공인들로 매번 북새통을 이뤘다. 2월3일 연 최 시장 출판기념회에서는 ‘우리가 봉인가’라는 공무원들의 탄식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경기도 공무원들은 하루가 멀다고 날아드는 도의원들 출판기념회 초대장에 “현금 납부 고지서를 받는 기분”이라며 고충을 토로한다. 마지 못해 눈도장을 찍으며, 얼마를 봉투에 담아야 할지 고민이다.

중소상공인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경기도 한 지자체에서 소규모 공사 수주를 받아 운영하는 건설업체 대표는 “여야 후보 가릴 것 없이 출판기념회에 가서 돈도 내고 눈도장도 찍는다. 누가 당선될지 모르지만, 찍히면 이 좁은 바닥에서 사업하기 어렵다. 일종의 보험을 든 것이다. 책값 부담도 만만찮다”고 토로했다.

이정하 홍용덕 박경만 기자 jungha98@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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