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오전 11시께 대구 중구 대구시청 앞에서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 등이 대구시에 노사평화의 전당 건립 계획 취소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일우 기자 cooly@hani.co.kr
‘대구는 노사분규가 없습니다. 붉은 조끼와 머리띠는 추방합니다. 대구에서 기업을 하는 분은 강성노조가 노사분규를 일으키는 것과 노동자에게 높은 임금을 주는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래야 투자와 기업유치가 잘 이뤄질 수 있습니다. 이런 대구형 노사상생 모델을 전국으로 확산시켜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대구에 노사평화의 전당을 지어 활용해야 합니다.’
대구시가 만든 ‘노사평화의 전당 건립 사업추진 세부계획’의 핵심 내용을 요약하면 대충 이렇습니다. 대구시는 이 계획서를 고용노동부에 제출해 200억짜리 노사평화의 전당을 ‘유치’했습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33조에는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그런데 붉은 조끼와 머리띠를 추방하겠다니, 헌법이 알면 눈물을 흘릴 일입니다. ’붉은 조끼‘가 민주노총을 가리키는 것인지, 아니면 자유한국당 예비후보들을 뜻하는 것인지는 10초만 생각해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름을 들으면 누구나 알 만한 큰 기업 하나 없는 대구는 다른 지역에 견줘 노동쟁의가 상대적으로 적은 편입니다. 통계청 ‘시도별 노동쟁의 건수’를 보면 2006년부터 2016년까지 대구에서는 모두 46건의 노동쟁의가 일어났습니다. 세종을 뺀 16개 시·도 중 10번째입니다. 특히 대구는 중소기업이 많아 노동쟁의가 일어나도 사람들은 큰 체감을 하지 못합니다.
대구에 노동쟁의가 적은 이유는 노동조합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전국 노동조합 조직률은 10.3%(2016년)인데, 지역 노동계 설명으로 대구의 노조 조직률은 5% 정도라고 합니다. 얼마 되지 않는 노조도 상당수가 한국노총 소속입니다. 고용노동부의 ‘2010년 노동조합 조직 현황’ 자료를 보면, 대구 노동자 중 한국노총 조합원(2만567명)이 민주노총 조합원(5661병)에 견줘 3.6배나 많습니다. 전국적으로 한국노총 조합원(72만여명)이 민주노총 조합원(58만여명)의 1.3배인 것을 감안하면 한국노총 비율이 높습니다. 또 대구 사람들은 보수적이어서 노조 활동도 꺼립니다. 쉽게 말해 대구에 노동쟁의가 적은 것은 노동자가 그냥 참고 살기 때문입니다.
대구는 노동쟁의도 적지만 노동자들의 임금도 적습니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4월 낸 ‘시도별 임금 및 근로시간 보고서’를 보면, 전국 16개 시·도 중 노동자 월급여액은 대구가 263만4000원으로 숙박 및 음식점업 상용노동자가 많은 제주를 빼고 전국에서 꼴찌입니다. 반면 대구 노동자 월 노동일수(21.2일)와 노동시간(178.3시간)은 전국에서 각각 세번째와 다섯번째로 높습니다.
대구시가 만든 ‘노사평화의 전당 건립 사업추진 세부계획’.
대구시의 주장대로라면 대구는 기업들로 북적여야 합니다. 노조와 노동쟁의도 적고 싼 임금으로 긴 시간 동안 노동자를 부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정 반대입니다. 대구의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는 1992년 이후 지금까지 전국 꼴찌입니다. 대구의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아 대구를 떠나고 있습니다. 통계청 ‘2017년 국내인구이동통계연보’를 보면, 대구는 지난해에만 1만1900명의 인구 순유출이 발생했습니다. 이중 1만1300명은 ‘직업’, 즉 직장 문제로 대구를 떠났습니다.
대구는 가진 것 없는 평범한 노동자들은 엄청나게 살기 힘든 도시입니다. 반대로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이 많거나 기업을 운영하는 사업주는 살기 좋은 곳입니다. 통계청 ‘2017년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 자료를 보면, 7개 특별·광역시 중에서 대구의 가구당 평균 근로소득은 2950만원(2016년 기준)인데 부산 다음으로 적습니다. 반면 대구의 가구당 평균 사업소득은 7개 특별·광역시 중 가장 높고, 재산소득도 서울과 부산 다음으로 많습니다.
대구시는 대구의 이런 현실을 긍정적으로 보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대구시는 노사평화의 전당을 지어 이런 ‘대구형 노사상생 모델’을 전국으로 확산시키겠다고 합니다. 다른 지역의 노동자들이 들으면 별로 반가워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고용노동부의 ‘2016년 노동조합 조직 현황’ 자료를 보면, 한국의 노조 조직 대상 노동자 1917만명 중 10.3%(196만명)만 노조에 가입돼 있습니다. 영국(23.5%), 일본(17.3%), 호주(14.5%) 등에 견줘 낮습니다. 노조에 가입한 노동자들은 한국노총에 42.8%(84만명), 민주노총에 33.0%(64만명)가 소속돼 있습니다. 전체 노동자 숫자를 놓고 보면 민주노총 소속 조합원은 3.4% 밖에 되지 않습니다. 대구시는 이 3.4%에게 투자와 기업유치의 책임을 묻는 논리를 펴고 있습니다.
민중당 대구시당은 지난 27일 대구시를 향해 이런 재미있는 논평을 하나를 냈습니다. “대구시는 수십년째 지역총생산, 각종 노동지표 꼴찌 책임을 ’붉은조끼‘(민주노총)에 전가하지 말고 정치와 행정을 독점해 온 ’빨간색 당‘(자유한국당)에 제발 묻기 바란다.” 대구시가 대구의 우울한 경제·노동지표에 대한 책임을 묻고 싶다면, 자신과 한국당에 먼저 묻는 것이 순서일 것 같습니다.
김일우 기자
cool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