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 비판 전단을 만들었다가 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8개월 동안 구속됐던 박성수씨(오른쪽)가 2015년 12월22일 1심에서 집행유예형을 선고받고 대구구치소를 나오며 마중을 나온 변홍철씨와 함께 웃고 있다. 김일우 기자 cooly@hani.co.kr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판하는 전단을 만든 박성수(45)씨가 8개월 동안 구속됐다가 풀려난 사건은 국가기관의 무리한 수사와 표현의 자유 침해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는 지난달 23일 이런 보고서를 내놓으며 “청와대와 검찰, 경찰로 이어지는 수사와 기소 과정에서의 외압 작동 여부는 추후에라도 밝혀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겨레>가 30일 입수한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의 ‘퍼포먼스 활동가 박성수의 정치풍자 전단 배포 및 살포에 따른 표현의 자유 침해 사건 진상조사 결과보고서’를 보면,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는 이 사건에 대해 ‘전단지 배포자에 대한 국가기관의 무리한 수사’와 ‘전단지 내용의 명예훼손 적용과 표현의 자유 침해’라는 결론을 내렸다.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는 보고서에서 “전단지 배포자에 대한 국가기관의 무리한 수사는 신청인·참고인 주장과 실수비(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 자료, 경찰 지침에서 확인할 수 있다”고 밝혔다.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는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업무수첩과 이병기 전 청와대 비서실장 주재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 자료 등을 입수해 분석했다. 김 전 민정수석의 업무수첩에는 ‘대통령 모욕 전단 살포 행위 ①건조물침입 ②경범죄법→경범죄 법정형 상행 개정’(2014년 11월3일) 등이 적혀 있었다. 수석비서관회의 자료에는 ‘최근 브이아이피(VIP)를 비난하거나 풍자하는 전단을 살포하는 사례가 있는데 그냥 넘어갈 사안이 아님. 민정수석은 관련자를 색출하고 수사해서 반드시 엄단토록 할 것(민정수석)’이라고 쓰여 있었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가 지난달 23일 내놓은 ‘퍼포먼스 활동가 박성수의 정치풍자 전단 배포 및 살포에 따른 표현의 자유 침해 사건 진상조사 결과보고서’.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는 이에 대해 “청와대 비서실장의 지시를 받은 정무수석과 민정수석은 경찰에게 전단지 배포자를 색출해 강력 처벌할 것을 지시한 것으로 추정된다. 전단지 배포자를 색출해 강력 처벌하고 반드시 엄단토록 할 것 등의 청와대 지시에 경찰은 위법한 압수수색을 집행하는 등 공권력을 무리하게 적용한 점이 확인됐다. 전단지 배포는 박근혜 정부의 실정을 비판하는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행사한 것으로 헌법상 보호받아야 하는 권리에 해당한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는 이어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인 이병기와 우병우 민정수석, 조윤선 정무수석을 조사해야 하지만 현재 3명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구속돼 조사를 진행할 수 없었다. 청와대와 검찰, 경찰로 이어지는 수사와 기소 과정에서의 외압 작동 여부는 밝힐 수 없었지만 이 사건의 중요한 쟁점이므로 추후에라도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는 지난해 7월31일 문화체육관광부와 문화예술계가 합의해 만들었다. 진상조사위 위원 21명 중 17명이 민간위원(문화예술계·법조계 등)으로 구성돼 있다.
박씨는 박 전 대통령의 비판 전단을 만들었다가 2015년 4월30일 명예훼손과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구속됐다. 명예훼손죄는 보통 피해자 고소가 없으면 수사를 하지 않는데 경찰과 검찰은 알아서 수사에 뛰어들었다. 1심 재판을 맡은 당시 대구지법 형사2단독 김태규 판사는 박씨의 구속 기간을 2개월씩 두번이나 연장해 6개월 동안 구속된 채 재판을 받게 했다. 이후 김 판사는 박씨가 미신고집회(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추가 기소되자 그의 구속 기간을 2개월 더 늘렸다. 박씨의 보석 청구도 기각했다.
김 판사는 그해 12월22일 박씨의 혐의가 모두 유죄라며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을 맡은 대구지법 형사1부(재판장 임범석)는 지난 1월25일 이 사건의 주요 쟁점이었던 전단 내용은 명예훼손에 해당되지 않는다며 정보통신망법과 집시법 위반 혐의만을 유죄로 인정해 박씨에게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다. 박씨가 만든 전단 내용은 “정윤회 염문을 덮으려고 공안정국 조성하는가?” “박근혜에 비하면 이명박은 성군이네” 등이었다.
김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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