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오전 부산 동구 초량동 일본총영사관 근처에서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세우려는 시민들과 이를 막아선 경찰이 대치하고 있다.
부산의 일본총영사관 앞에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세우려는 시민단체와 경찰의 대치와 몸싸움이 이틀 동안 계속됐다. 결국 경찰이 노동자상을 빼앗아 설치를 막자, 시민단체 회원들은 이날 오후 늦게까지 항의 시위를 벌였다.
1일 아침 8시께 부산 동구 초량동 일본총영사관 부근. 전날 밤 이곳에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설치하려다 이를 막는 경찰과 밤새 대치한 ‘적폐청산·사회대개혁 부산운동본부 강제징용 노동자상 건립특별위원회’(부산 노동자상 특위) 회원과 참가 시민 100여명이 모여 있었다. 이들은 이곳에서 노동자상 건립을 막는 외교부와 부산시, 동구, 부산경찰청 등을 규탄했다. 김재하 부산운동본부 대표는 “부산 평화의 소녀상이 있는 일본총영사관 앞에 노동자상을 세울 수 없는 상황이 슬프다. 이를 막는 경찰은 친일행위를 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오전 9시50분께. 참가자들이 무게 1.2t가량의 노동자상 아래에 철봉을 깔아 굴리며 일본총영사관 쪽으로 이동하자 경찰이 이를 막아섰다. 몸싸움이 벌어졌다. 참가자들은 “경찰은 일본총영사관에서 100m 이내 구간에 대한 집회 제한을 했을 뿐 노동자상을 옮기는 것을 못하게 할 권리는 없다”고 주장했다. 경찰 쪽은 “관할 지자체인 동구청이 노동자상 건립을 막아달라는 요청을 해 (법적으로 이동 제한이) 가능하다”고 되받았다.
오전 10시30분께. 경찰은 참가자들에게 불법 집회라며 여러 차례 해산을 통보했다. 이어 보호구를 착용한 기동대를 투입해 시민들이 둘러싸고 있던 노동자상 확보에 나섰다. 노동자상을 붙잡고 있던 시민 20여명은 고함을 치며 온몸으로 저항했지만, 곧 경찰의 제한선 밖으로 밀려났다. 시민들이 계속 항의했지만, 경찰은 보호구를 착용한 기동대 3개 중대를 투입해 노동자상을 겹겹이 에워싸 시민들의 접근을 차단했다.
1일 오전 부산 동구 초량동 일본총영사관 근처에서 시민들이 강제징용 노동자상 설치를 시도하자 경찰이 이를 막아서며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오후 4시께. 일본총영사관 근처에서 민주노총과 5개 진보정당 공동투쟁 선포 기자회견과 노동자상 건립대회가 잇따라 열렸다. 주최 쪽은 집회 참가자를 5000여명으로 추산했다. 경찰은 39개 중대 3000여명을 주변에 배치했다.
부산 노동자상 특위는 지난해 9월부터 일본 정부에 전쟁범죄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뜻에서 일본총영사관 앞 강제징용 노동자상 건립을 추진했다. 특위 관계자는 “일본총영사관 앞에 세워야 일제의 조선인 강제징용 만행을 시민들에게 널리 알리고 일본 정부에 경고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병준 부산 노동자상 건립특위 집행위원장은 “강제징용 희생자들은 여전히 고통받고 있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을 시민들이 하는데 방해하지는 말아 달라”고 말했다.
특위가 일본총영사관 앞을 고집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다른 곳은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설치하는 의미가 약해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부산엔 2개의 평화의 소녀상이 있으나, 일본총영사관 앞에 있는 소녀상만 알려져있고, 초읍동 학생교육문화회관 광장에 있는 소녀상은 시민 대부분이 있는 줄도 모른다.
1일 오전 부산 동구 초량동 일본총영사관 근처에서 경찰이 시민과의 몸싸움 끝에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확보했다.
그러나 외교부와 부산시 등은 “한-일 간에 외교적 분쟁을 키울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대신 남구에 있는 국립 일제강제동원역사관에 설치할 것을 제안했다. 이미 일본총영사관 앞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을 두고도 이미 한-일 간에 갈등이 빚어진 상태이기 때문이다. 또 박근혜 정부의 위안부 문제 합의를 문재인 정부가 사실상 인정하지 않은 점을 두고도 두 나라는 충돌한 바 있다. 이곳에 강제징용 노동자상까지 설치된다면 가뜩이나 좋지 않은 두 나라 관계는 한층 더 악화될 것으로 예상된다는 것이 정부의 의견이다.
부산/글·사진 김영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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