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오후 전남 영암군 신북면 주암삼거리 인근 도로에서 25인승 미니버스가 코란도 승용차와 부딪친 뒤 우측 가드레일을 뚫고 3m 아래 밭으로 추락해 8명이 숨졌다. 사진은 미니버스 블랙박스에 찍힌 사고 당시 모습을 갈무리한 모습. 전남지방경찰청 제공
나주평야 한가운데 있는 전형적인 농촌인 전남 나주시 반남면에는 2일 아침 이슬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한가족처럼 오순도순 살아가는 농촌 공동체인 반남 주민들은 하루 전 이웃 영암군에서 일어난 비극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평생을 동고동락하던 이웃들이 순식간에 세상을 떠났거나 크게 다쳤다는 비보였다. 전날 사고로 1600여명의 주민 중 5명이 숨지고 7명이 중상을 입었다. 주민들은 면사무소 앞 합동분향소를 찾아가 멍하니 영정사진들을 바라봤다. 특히 사상자가 난 마을 6곳의 주민들은 분향소 앞에서 할 말을 잃고 슬픔에 잠겼다.
가족을 잃은 이들의 아픔은 말로 할 수 없었다. 숨진 김아무개(84) 할머니의 맏딸 오화순(60)씨는 빈소가 차려진 장례식장에서 “어린이날에 6남매가 다 같이 모여 저녁을 먹기로 했는데”라며 통곡했다. 김 할머니는 남편과 사별한 뒤 쓸쓸하게 혼자 집에 있기 싫다며 이웃들과 함께 밭일을 다녔다. 이렇게 품삯을 모아두었다가 자식들 몰래 손주들 손에 쥐여주는 일이 큰 행복이었다. 역시 문아무개(75) 할머니의 막내딸 김아무개(45)씨도 상복 차림으로 “자신을 위해 돈을 쓴 적이 없는 어머니를 이렇게 잃고 나니 더 죄송스럽다”고 비통해했다.
전남 영암경찰서는 이날 도로교통공단·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과 합동으로 현장조사를 벌였다. 사고 차량의 블랙박스 영상도 확인했다. 이 영상을 보면, 편도 2차로로 달리던 버스는 2~3초가량 좌우로 흔들리다가 앞서가던 코란도 승용차에 부딪쳤다. 그 뒤에도 계속 좌우로 요동치더니 30여m를 더 가서 오른쪽 도로시설물을 들이받았다. 경찰은 과속이나 음주, 차량 고장 등 사고 원인과 관련한 사실을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사고 원인과 안전띠 착용 여부 등을 수사하고 있다.
1일 오후 5시25분께 전남 영암군 신북면 장산리 주암삼거리 13번 국도에서 25인승 소형버스가 가드레일을 뚫고 밭고랑으로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해 타고 있던 15명이 숨지거나 다쳤다. 전남경찰청 제공
이번 사고는 영농철에 부족한 농촌 인력을 운송하는 버스들이 얼마나 위험천만한지 다시 일깨웠다. 사고 버스에는 50여㎞ 떨어진 알타리무밭에 출하작업을 하러 갔던 60~80대 여성 14명이 타고 있었다. 유일한 남성이었던 운전기사(차주)도 70대였다. 탑승자 15명 중 8명이 숨지고 7명이 다쳤다. 이들은 일을 마치고 어두워지기 전에 서둘러 귀가하는 중이었고, 상당수는 안전띠를 매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차량도 2002년 등록된 낡은 것이었다.
이런 사고는 전남에서도 처음이 아니었다. 지난달 13일 새벽 목포시 상동 버스터미널 앞 교차로에서 15인승 승합차가 신호를 무시하고 달리다 승용차를 들이받았다. 이 사고로 승합차 탑승자 8명 중 나아무개(74) 할머니가 숨지고 7명이 다쳤다. 목포시에 사는 이 여성 노인들도 무안으로 밭일을 가던 길이었다. 특히 숨진 나씨는 안전띠를 매지 않아 사고 순간 차량 밖으로 튕겨나가면서 비극을 맞았다. 이 승합차의 등록 연도도 2000년이었다. 함평에서도 2016년 9월25일 25인승 버스가 4.5t 화물차와 충돌했다. 이 사고로 나주·영암 등지에서 함평으로 밭일을 가던 여성 노인 김아무개(72) 할머니 등 13명이 다쳤다.
경찰은 농촌 인력 운송차량의 대형사고가 잦은 이유를 운전자와 탑승자, 운송업체의 준법·안전 의식 부족에서 찾는다. 운송버스의 운전자는 빠듯한 작업 시간에 맞추기 위해 새벽 일찍 달려가고, 작업이 끝나면 서둘러 귀가해야 한다. 따라서 과속 질주와 신호 위반, 곡예 운전, 정원 초과 등 위험 운전을 할 때가 많다. 또 일을 나가는 노인들의 안전 의식도 부족한 편이다. 이들 노인의 상당수는 안전띠를 착용하라는 안내를 받아도 ‘성가시다’며 이를 따르지 않는다.
이런 일자리가 계절적이어서 소개업체나 운송업자가 대부분 영세하다는 점도 안전에 위협이 된다. 영세한 업체는 낡은 차량을 들여와 허술하게 관리하는 경우가 많다. 또 영세한 운송업체들은 보험 가입도 회피해 사고가 났을 때 치료와 보상 등에서도 문제가 생길 소지가 크다. 이번 사고 운전자 이아무개(72·사망)씨는 영업용 신고는 하지 않았지만 보험에는 가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성록 전남경찰청 홍보계장은 “이 업계에서는 영세 운송업체가 난립해 실태를 파악하기 어렵다. 사업자와 운전자를 대상으로 안전 교육을 하고 단속을 강화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안관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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