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민주화운동기록관이 <광주사건>이라는 잡지에서 찾아낸 광주 여성의 편지. 5·18민주화운동기록관 제공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의 참상을 적어 해외에 알린 한 여성의 영문 편지 내용이 공개됐다. 5·18기념재단과 5·18민주화운동 기록관은 이 편지를 쓴 여성을 찾고 있다.
16일 5·18민주화운동 기록관의 말을 종합하면, 1980년 5월 광주에 사는 여성이 광주의 참상을 알리기 위해 쓴 영문 편지를 발견했다. 5·18기념재단 최용주 비상임연구원도 지난해 미국 UCLA동아시아도서관에서 '텔렉스 문서, 광주 소녀에게서 온 편지'를 찾았다.
이 편지는 광주시민이 5·18 참상을 영문으로 작성해 해외에 알린 첫 사례로 꼽힌다. 작성일은 1980년 5월23일 오후 6시30분께로 적혀있다. 이 편지 작성자는 자신을 광주에 사는 여성이라고 소개한 뒤 “저의 안전을 고려해 달라. 신분이 드러나면 계엄군이 즉각 자신을 체포할 수 있다”고 전했다. 소녀는 영문 편지에서 ‘girl’로 자신을 소개했는데, 대학을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작성자는 편지에서 1980년 5월18∼20일 사흘간 가족과 본인이 경험한 공수부대원의 만행을 생생하게 전했다. 편지에 “19일 오전 아버지가 충장로의 2층 건물 옥상에서 계엄군이 부상한 시위자들을 바닥으로 던져 죽이는 모습을 봤다”고 썼다. 또 “비슷한 시각 계엄군은 총으로 젊은 시위자의 머리를 구타해 뇌가 터져 나오는 끔찍한 모습을 어머니가 목격했다”고 했다.
또 5월 21일 오후 1시 계엄군의 집단 발포 때 자신이 본 처참한 장면도 적었다. 그는 “10살짜리 아이가 계엄군의 무차별적인 총격에 맞아 사망하고 금남호텔의 요리사가 그의 일터에서 숨지는 것을 봤다”고 적었다.
일본 도쿄에서 꾸려져 활동하던 ‘광주학살긴급회의’라는 단체가 광주학살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만든 <광주사건>이라는 책의 표지. 5·18민주화운동기록관 제공
계엄군이 집단발포 이후 외곽으로 철수한 뒤 시민들은 옛 전남도청 분수대 광장에서 집회를 열었다. 작성자는 “대학교 학생회장들의 순수성과 헌신에 감명받았다”며 “이들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우선으로 추구하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작성자는 편지의 끝부분에서 “광주의 비극이 당시 한미연합사령부 사령관에게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 영문 편지는 현장을 취재하던 외신기자에게 전달됐다. 그리고 일본 도쿄에서 꾸려져 활동하던 ‘광주학살긴급회의’ 단체에 건네졌다. 광주학살긴급회의는 일본에 있는 미국인 선교사들이 중심이 돼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알리고자 만든 단체다. 긴급회의는 이 편지와 함께 당시 계엄군의 만행 사진 수십장을 담은 <광주사건>이라는 책자를 만들었다.
5·18민주화운동기록관도 지난해 11월 이 편지의 존재를 처음 알고 이 편지의 작성자를 찾기 시작했다. 당시 일본에서 신변 보호를 위해 작성자의 신상을 비밀로 해 소재 파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5·18기록관은 이 편지를 쓴 작성자나 편지에 관해 알고 있는 분의 제보를 받는다. (062)613-8205.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