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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전국일반

숨죽인 ‘오월 여성’ 목소리를 내다

등록 2018-05-19 05:00수정 2018-05-19 16:26

전야제·기념식서 여성들 무대 올라 진상규명 요구
“역할도 피해도 축소되어왔다”…저항활동 기록복원
성폭력 피해자 위한 지역 시민단체 연대 움직임도
80년 고교생 아들 문재학군을 잃은 유가족 김길자씨가 18일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세월호 유가족을 안고 위로하고 있다. 안관옥 기자
80년 고교생 아들 문재학군을 잃은 유가족 김길자씨가 18일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세월호 유가족을 안고 위로하고 있다. 안관옥 기자
“광주 시민 여러분, 지금 우리 형제자매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어떻게 집에서 편안하게 주무실 수 있습니까. 여러분들이 도청으로 나오셔서 우리 형제자매들을 살려주십시오.” 18일 아침 9시30분 ‘전옥주’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전춘심(68)씨(<한겨레>8일치 3면)가 광주시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 마련된 추모공연에서 처음으로 공식 무대에 올랐다. 38번째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선 그동안 이름없이 빛도 없이 숨죽여 왔던 여성들이 처음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변화를 보였다.

5·18 가두방송의 주인공 차명숙(58·경북 안동)씨도 전날인 17일 밤 광주 금남로 전야제 무대에 섰다. 505보안부대와 광주교도소에서 잔혹한 고문을 당했던 차씨는 “광주에 오는 것이 어렵고 무서웠지만, 38년간 고통받아온 피해자들을 위한 진상규명 촉구를 위해 이 자리에 섰다”고 말했다. 차씨 역시 전야제 무대에 처음 올랐다. 차씨는 “무대에 서니 또 다시 그 때 생각이 나 힘들어 앞을 못보고 자꾸 먼 곳을 보면서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기념식서 전춘심씨가 맨 앞줄에 앉은 것은 달라지는 광주 여성들의 위치를 보여준다. 광주에선 그동안 남성 시민군의 보조자로 여겨졌던 5·18 여성들의 활동을 제대로 평가·기록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5·18 당사자와 유족 등이 운영하는 오월어머니집은 5·18 당시 여성에 대한 성폭력·성고문 등이 국가폭력으로 규정될 수 있도록 진상규명 활동에 나서는 동시에 여성들의 주체적 저항활동 기록 복원에 나설 계획이다. 이를 위해 우선 100여명에 달하는 5·18민주화운동 여성 구속자들이 처음으로 한 자리에 모이는 행사가 마련된다. 5·18항쟁에 참여했다가 상무대 영창으로 끌려갔던 정현애(66) 오월어머니집 관장은 “당시 여성들의 역할이 49%였는데도 남성 시민군처럼 총을 들지 않았다는 이유로 5월 여성의 고난이나 고행은 흥미거리 정도로만 다뤄졌다”며 “5·18 항쟁 당시 여성들의 피해뿐 아니라 저항활동을 역사적 사실로 복원하는 데 힘을 쏟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생 4명으로 구성된 ‘파란여성’이란 소모임은 민주열사 ‘전옥주’(전춘심)의 활동 등 여성들의 민주화운동을 널리 알리기 위해 크라우드 펀딩을 시작했다.

1980년 5월 항쟁을 목격하고 증언한 바바라 피터슨(왼쪽)과 안성례 전 오월어머니집 관장이 18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만나 인사하고 있다. 광주/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1980년 5월 항쟁을 목격하고 증언한 바바라 피터슨(왼쪽)과 안성례 전 오월어머니집 관장이 18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만나 인사하고 있다. 광주/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광주 시민들 사이에선 “우리가 그동안 이 성폭력 사건들을 몰랐던 것이 아닌데 말하지 않았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남자들에게 가해진 고문과 살해에 비해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거나 ‘남부끄러운 일’이라며 이야기하기를 꺼려왔던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백희정 광주나비 대표는 “9월 진상조사위가 활동을 시작하기 전에 여성단체들이 공동 대책위를 꾸려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활동을 시작하려 한다. 광주 여성 피해자가 다시 숨지 않도록 성폭력 피해자도 국가폭력 피해자 중 하나라는 점을 시민들 사이에서 공론화해야 한다”고 했다.

기념식장 한 켠에선 광주어머니가 세월호 어머니들을 끌어안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하얀 소복 차림의 5월 어머니들은 17일과 18일 금남로 전야제와 5·18기념식에 노란옷을 입고 참석한 세월호 어머니 30여명을 안은 채 말없이 눈시울을 붉혔다. 1980년 아들 문재학(당시 16·광주상고1)군을 잃은 유가족 김길자(79)씨는 “인자 울지들 말어. 다시는 이런 아픔이 없도록 진상을 밝히고, 책임자를 처벌하려면 맘 다부지게 먹여야 써”라며 맞잡은 손을 오래 놓지 않았다. 단원고 2학년 고 오영석(당시 16)군의 어머니 권미화씨는 “분해서 38년을 어떻게 버티셨는지 모르겠다. 아들을 대신해 민주화에 앞장섰던 5월 어머니들의 발걸음을 따르겠다”고 다짐했다. 오월어머니들은 세월호 참사 뒤 같은 국가폭력 희생자로서 아픔을 겪고 있는 세월호 유가족들과 연대해왔다.

정대하 안관옥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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