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부산 부산진구 개금동 새날교회 강당에서 박종철합창단이 노래연습을 하고 있다.
지난 22일 저녁 7시께 부산 부산진구 개금동 새날교회 강당엔 이민환 부산대 음악학과 명예교수와 4명이 피아노 반주에 맞춰 목소리를 가다듬고 있었다. 어느 정도 발성 연습을 마친 이들은 민중가요 <마른 잎 다시 살아나>를 굵직한 목소리로 불렀다. 피아노에 앉아 있던 이 교수가 “곧 합창단 본 연습이니 다음에 다시 맞추자”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박종철합창단’ 창단연주회 전 마지막 전체 연습이다. 강당에는 단원 30여명이 이들의 연습을 지켜보며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이 교수가 앞에 서서 박수를 치자 강당이 조용해졌다. 단원들은 테너 1·2, 바리톤, 베이스 파트별로 자리에 앉아 있었다.
“소리를 작게 내더라도 (음이) 정확해야 합니다. 가사를 순간 잊어도 당황하지 말고 앞을 똑바로 보세요. 합창은 전체가 함께 가는 겁니다.” 발성 연습 전 합창단 지휘를 맡은 이 교수의 말에 단원들이 자세를 고쳐 앉았다.
박종철합창단은 2016년 8월 창단됐다. 백영제 단장은 “독일에는 지역의 문제점을 노래를 통해 발언하는 시민 합창단이 있다. 이른바 ‘불만’ 합창단이다. 이를 본떠 민주주의 운동과 시민운동에 보탬이 되는 합창단을 만들고자 했다. 이 교수와 논의하다 2016년 6월 민주항쟁 기념식 뒤풀이 자리에서 공식 제안했다. 6월 민주항쟁을 기념하고 부산의 아들 박종철 열사를 기리고, 시민문화운동에 기여하자는 뜻에서 박종철합창단을 창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종철 열사는 부산 혜광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언어학과에 진학했다가 1987년 1월 공안당국의 고문으로 숨졌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6월 민주항쟁에 불을 붙였다.
박종철합창단은 창단 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촛불집회, 박종철 열사 30주기 추모식, 세월호 3주기 추모문화제, 6월 민주항쟁 기념식, 부마민주항쟁 기념식, 5·18 기념식 등에 참여해 공연을 펼쳤다. 창단 당시 20명이 채 안 됐던 단원들은 현재 40명이 넘는다. 30대에서 60대까지 다양한 세대가 모였다. 부림사건 고문 피해자 고호석 정치개혁 부산행동 상임대표, 김종세 전 민주공원 관장, 박철 목사, 신수현 부산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 등이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박종철합창단은 26일 오후 5시 부산 민주공원 큰방에서 창단연주회를 연다. 민중의 애환과 소망, 사랑 등을 담은 민중가요를 부른다. 합창단 부단장을 맡은 박철 목사는 “노래를 부르면서 단원들은 마음이 치유되는 느낌을 받는다. 이를 시민 여러분에게 나눠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박종철합창단은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면서 해마다 정기연주회를 열 계획이다.
이 교수의 지휘에 따라 단원들은 뮤지컬 <레 미제라블>의 <민중의 노래>를 시작으로 <광야에서>, <그날이 오면>을 노래했다. 이 교수는 노래연습 도중에 각 파트의 실수를 곧바로 지적했다. 어려운 소절을 잘 소화하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강당은 열정적으로 노래를 연습하고 있는 단원들의 체온으로 금세 후끈해졌다. 1980~90년대 최루탄이 뒤덮인 거리에서 민주주의 운동에 젊음을 바쳤던 단원들의 목소리가 강당 너머 밖으로 멀리 퍼졌다.
부산/글·사진 김영동 기자
ydki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