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을 평생 연구해 온 독일인 베르너 삿세 작가. 광주시립미술관 제공
여백과 일필휘지를 강조하는 전통적인 수묵화 기법과는 달랐다. 수차례 붓질을 해 나온 흑색의 둔탁함이 메시지를 명료하게 전달하는 힘이 됐다. 작가 베르너 삿세(77)가 한국의 정경과 자신의 사유를 담은 작품 60여 점을 전시회를 통해 선보이고 있다. 그의 전시회는 광주시 서구 농성동 하정웅미술관에서 24일까지 이어진다. “온갖 상념을 떨쳐내기 위해 한 획 긋기를 반복해 형성된” 그의 작품엔 “걱정과 근심이 말끔히 사라져 버린 ‘운산무소’(雲散霧消)의 경지가 담겨 있다”는 평이 따른다.
베르너 삿세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출신이다. 1966년 전남 나주 호남비료 고문이던 장인을 따라 4년 남짓 한국에 살았다. 1970년 독일로 귀국해 독일 보훔대 늦깎이 대학생이 돼 한국학 연구를 시작했다. 1975년 ‘계림유사에 나타난 고려방언’이라는 주제의 논문으로 독일인 첫 한국학 박사가 됐다. 1988년 보훔대 한국학과 정교수로 임용됐고, 1992년 함부르크대에 한국학과로 자리를 옮겨 한국학 연구에 몰두했다. 2006년 10월 은퇴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전남 담양으로 이사했다. 한양대 문화인류학과에서 석좌교수로 재직했던 그는 2010년 ‘운명처럼’ 만난 세계적 전위무용가 홍신자씨와 결혼했다.
한국학 연구자 독일인 베르너 삿세와 그의 아내인 세계적 전위무용가 홍신자씨가 지난 7일 광주 하정웅미술관에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광주시립미술관 제공
서예와 붓의 멋에 흥미를 느꼈던 그는 2006년 한국에 와 화선지를 다시 폈다. 캔버스에 유화를 그리거나 화선지에 시화를 그렸다. 따로 정규 미술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지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대로 화선지에 붓질을 하며 자연을 그렸다.” 베르너 삿세는 화선지에 논어 구절이나 정철의 권주가 ‘장진주사’의 한 대목 등을 거침없이 써 내려가 한국인 친구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한국적 유머 감각과 해학이 넘치는” 그는 기타를 치며 <가을편지> <아침이슬>도 곧잘 부르며 흥을 내기도 한다.
베르너 삿세의 작품 전시장. 광주시립미술관 제공
그렇게 그는 운명처럼 작가가 됐다. ‘무사무법’(無師無法)의 묵화를 통해 자유롭게 자신의 이야기를 표현했다. 벌써 개인전을 15차례나 했고, 퍼포먼스 횟수도 10여차례에 달한다. 그의 작품 세계는 똘레랑스와 맞닿아 있다는 평이 나온다. 지난 7일엔 미술평론가 성완경 인하대 명예교수와 베르너 삿세의 부인 현대무용가 홍신자씨 등이 참석해 그의 삶과 예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우리’라는 범주에 들어와 중간자로 살고 있는 그의 시선을 통해 우리가 쉽게 지나쳐 버렸던 자연과 일상, 우리 것의 멋스러움이 무엇인지 재발견할 수 있는 기회다.”
광주/정대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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